[책세상] 대립과 혐오 원인 좌우 아닌 집단 정체성

[책세상] 대립과 혐오 원인 좌우 아닌 집단 정체성
에이미 추아의 '정치적 부족주의'
  • 입력 : 2020. 04.24(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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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본능과 불평등 결합
부족주의 간과해온 미국

2014년 미국 전역의 경찰 수백 명에게 '자신의 공동체에서 가장 큰 위협'을 하나만 꼽으라고 물었다. 경찰 대부분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나 폭력적인 갱단이 아니라 '소버린 시티즌'으로 불리는 반정부적 성향의 집단을 들었다. 이 집단은 2008년 경기 침체 이후 급증해 현재 30만 명이 넘는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노동자 백인 계급들은 정치 활동 참여도, 선출직 공무원과의 접촉도가 적고 투표율도 낮다. 겉으로는 개인주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족적'이다. 엘리트 계층은 그동안 '부족적 정체성'을 형성해주는 집단들에 눈길에 두지 않았다.

국제 분쟁 전문가이자 '불타는 세계' 등을 썼던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의 신작 '정치적 부족주의-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는 오늘날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립과 혐오의 원인을 기존의 좌우 구도가 아닌 부족주의 관점에서 찾는다. 지금까지 미국이 부족주의를 간과하고 냉전 프레임으로 베트남, 이라크 등을 바라봤던 탓에 전쟁에서 패배했고 미국 내에서도 부족적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집단 본능은 소속 본능이면서 배제 본능이다. 저자는 집단 본능으로 갈라진 부족과 불평등이 결합하면서 세계 곳곳 정치적 부족주의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교육 수준, 종교, 젠더 등 정체성의 대결이 좌우 대결을 압도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보자. 이데올로기를 덧씌운 렌즈로 세상을 보면 정치적 격동의 주요인인 집단 정체성이 보이지 않고 그 때문에 드러나는 현상도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

특정 당 지지자나 특정 지역 거주자, 특정 성별 혐오자 사이에는 교류가 전혀 없는 탓에 민족적 차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를 뭉뚱그리고 탈인간화해 적으로 규정한 뒤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이 가능하다. 저자는 이들 한 명 한 명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과 이상을 확인할 때 부족적 적대가 어디에서 발원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야 국민국가를 위협하는 위기가 닥쳐왔을 때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진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김승진 옮김. 부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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