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7)귤(상)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7)귤(상)
“녹색 잎에 하얀 꽃… 방탕하지 않고 굳세면서 일관되네”
  • 입력 : 2020. 04.27(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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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 귤 특성 통해 인품을 이상화
김정 기록한 귤유(橘柚) 아홉 가지
귤을 녹두에 보관하면 더 오래 가

#귤송(橘頌), 귤을 찬미하다

귤, 천지간에 아름다운 나무여. 이 곳 땅에 내려왔구나. 타고난 성품을 바꾸지 않고 남국(南國)에서 자라는구나. 뿌리 깊고 단단해 옮기기 어려우니 너의 곧은 뜻 보는 것 같구나. 녹색 잎에 하얀 꽃, 무성한 것이 사람을 즐겁게 하고, 겹친 가지 날카로운 가시에 둥근 열매가 알차게 맺혔네. 푸르고 누런 색이 섞여서 색은 찬란하다오. 불그스름한 껍질에 하얀 속살, 중한 일 맡길 수 있겠네. 무성하고 잘 다듬어져 아름답고 추하지 않구나.

늘 푸른 나무의 황금빛 귤

어린 그대의 기개 찬미하노니 남들과 다른 곳이 있네. 홀로 서며 옮겨가지 않았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으리? 깊고 튼튼해 옮기기 어렵고 마음은 넓어 다른 것을 구하지 않네. 세상에 홀로 깨어 뜻대로 하며 시류를 따르지 않으니 욕심을 절제하고 자신을 조심해 끝내 과실을 범하지 않네. 덕을 지녀 사사로움이 없으니 천지와 하나가 되네. 바라건대 세월과 함께 흘러도 오랫동안 그대와 친구로 있고 싶네. 아름다우면서 방탕하지 않고 굳세면서 일관되네. 나이는 어려도 어른과 스승이 될 수 있네. 품행이 백이(伯夷)와 비견되니 나는 그대를 본보기로 삼으리(권용호 역, 2015).

굴원(屈原, 기원전 353~278)의 아름다우면서도 기백이 있는 '귤송(橘頌)'의 전문이다. 귤은 중국 남쪽 초나라의 특산물로 굴원은 그 귤의 특성을 통해서 자신의 인품과 자질을 이상화시키고 있다. 이 시는 문학사적으로 최초의 영물시(詠物詩)라고 한다. 영물시란 자연의 동·식물을 의인화시키거나 사람의 감정을 만물에 이입시킨 시를 말한다.

'초사(楚辭)'는 전국시대(戰國時代) 후기 초(楚)나라의 고유한 언어와 음악을 이용해 지어진 당시 새로운 시문체(詩文體)이자 굴원과 그 이후의 작가들이 지은 시를 말한다. 초사는 동시대 북방에서 유행하던 '시경(詩經)'의 시문체와는 다른 새로운 남방 시가 형식이었다. '초사(楚辭)'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한(漢)나라 때인데 굴원과 송옥(宋玉) 등의 작품을 하나로 엮으면서 '초사(楚辭)'가 시작된 것이다. 굴원이 살았던 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어둡고 혼란했던 전국시대로 제(齊)·초(楚)·연(燕)·한(韓)·조(趙)·위(魏)·진(秦)나라가 천하를 놓고 우열쟁패를 다투고 있었다. 굴원은 감귤로 유명한 동정호(洞庭湖) 일대에서 유배 생활하며 10년을 떠돌았고 강남의 여러 지역을 두루 유랑했다. 그래서 '초사(楚辭)'는 발생지가 남방 초나라의 한수(漢水) 유역이어서 그 지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남방문학으로 굴원의 작품이 25편이나 전한다. 북방과 남방의 차이는 기후에 따르는 풍속(風俗)의 영향이 크다. 그래서 남방에서는 물을 중시하여 수신(水神)을 모시고 북방에서는 산을 중시하여 산신(山神)을 공경한다. 남방에서는 굴원처럼 물에 빠져 죽으면 수신에게 제사 지낼 때 반드시 제물을 물 속에 던지지만, 북방에서는 산신에게 제사 지낼 때 불을 피워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한다. (전목(錢穆), 2018). 초나라의 글과 소리, 초나라의 문화를 사랑했던 굴원이 무능한 관료들 때문에 초나라가 패망하는 것을 보고 마지막으로 간 곳이 장사(長沙)의 멱라수였다. 어부와 대화체로 된 '어부사(漁父辭)'에서 굴원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찌 깨끗한 몸에 사물의 더러움을 받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바에야 내 차라리 상강(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 배 속에 묻히겠습니다. 어찌 고결한 몸에 세속의 먼지를 묻힐 수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눈 속의 귤

#고려시대 토물 탐라귤

우리나라 역사서에 탐라국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이다. "백제 문주왕 2년(AD. 476) 여름 4월에 탐라에서 방물을 바치자 왕이 기뻐하여 그 사신을 은솔(恩率)로 임명하였다(夏四月 耽羅國獻方物, 王喜, 拜使者爲恩率.)"라는 기사는 귤의 의미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속국 지역에서 나는 조공품을 방물(方物)과 토물(土物)로 나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귤이 고려시대 이후 늘 진상품이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귤은 대표적인 공물(貢物)이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으나 그것이 방물로 분류되었는지 토물로 분류되었는지, 아니면 둘 모두에 포함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물을 바친 달을 보면 그 시기가 감귤이 생산되는 시기인지, 그 시기에 어떤 귤인지 추측할 수가 있다.

고려 문종(文宗) 6년(1049) 3월, 임신일, 삼사(三司)에서 탐라국에서 해마다 바치는 귤의 정량을 100포(包)로 개정하여 영속케 해야 한다고 아뢰자 왕이 그대로 따랐다(壬申日. 三司 奏, 耽羅國歲貢橘子改定一百包子永爲定制從之). 이 기사에 보이는 대로 탐라에서 해마다 귤을 바치는 규정을 다시 정하는 것으로 보아, 문종 6년(1049) 이전, 해마다 탐라에서 토물(土物:토산물)이나 방물을 바쳤던 기록을 찾아보면, 개정하기 전에도 귤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종 3년(1049) 11월에 토물(土物), 단종(端宗) 9년(1043) 11월에 방물(方物), 단종(端宗) 2년(1036) 11월에 방물, 정종(靖宗) 원년(1034) 11월에 토물(土物), 현종(顯宗) 21년(1030) 9월에 방물, 20년(1029) 가을 7월에 방물, 18년(1027) 6월에 방물, 13년(1022) 2월에 방물, 12년(1021) 7월에 방물, 태조(太祖) 8년(925) 11월에 방물을 바쳤다. 이 기록으로 보면, 탐라가 귤을 재배한 시기는 방물과 토물을 바친 시기 중 가장 이른 시기인 고려 태조 8년(925) 까지로 소급될 수 있다.

귤 향기를 즐기는 탐라순력도 중 귤림풍악

#조선시대 귤의 종류

15세기에 제주 유배인 충암(충庵) 김정(金淨)은 1520년 8월~1521년 10월까지 제주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적은 '풍토록(風土錄)'을 남겼는데 그 저서가 제주 감귤의 종류를 적어놓은 가장 이른 문헌이다. 김정은 이 기록에서 귤유(橘柚)는 아홉 가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곧, ①금귤(金橘, 9월에 익으니 가장 이르다. 열매가 조금 커서 매우 달다), ②유감(乳柑), ③동정귤(洞庭橘,…조금 작으나 맛이 시원하고 신맛이 더 난다), ④청귤(靑橘, 시어서 겨울이 지나 2, 3월이 되면 시지만 단맛이 알맞게 된다…), ⑤산귤(山橘, 열매가 작고 씨가 유자와 같아 맛이 달다), ⑥감자(柑子), ⑦유자(柚子), ⑧당유자(唐柚子, 열매 크기가 모과와 같이 크나 맛은 유자만 못하다), ⑨왜귤(倭橘, 크기가 당유자 다음으로 크지만 맛도 당유자만 못하여서 품질이 가장 아래이다), ……충암은 "제주에서 볼 만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 오직 귤나무 숲만은 참으로 신기한 볼거리"라고 했다.

1796년 정조 때 관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읍지(濟州邑誌)'에는, 감자(柑子), 유자(柚子), 금귤(金橘), 유감(乳柑), 동정귤(洞庭橘), 청귤(靑橘), 당유자(唐柚子), 등자귤(橙子橘), 산귤(酸橘), 대귤(大橘), 소귤(小橘) 등 11종을 기록하고 있다.

#귀한 과일 귤 보관법

귤이 바다를 건너 간 귀한 과일이고 보니 귤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방법도 연구되었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 귤 저장 방법이 나와 있다. "꼭지가 단단한 감귤을 가려 무에 꽂아 종이로 싸서 따뜻한 데 두면 봄이 되어도 상하지 않는다." "밀감(柑)과 마른 솔잎을 켜켜이 놓고 술내 안 나는 데 두면 물크러지지 않는다." "금귤(金橘)을 은(銀)이나 주석(錫)으로 만든 그릇 속에 두거나, 참깨(油麻)와 섞어 갈무리해 두면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금귤을 녹두 속에 넣어 두면 오래도록 변하지 않으니, 귤의 성질은 뜨겁고, 녹두의 성질은 차기 때문에 오래 가는 것이다." "귤이나 등자(橙子)는 녹두 속에 갈무리해 두는 것이 가장 좋지만, 쌀 가까이에 두면 안 된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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