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72주년 추념식. 4·3 진상규명운동의 여정에 제주 시인들은 시로 힘을 보태왔다.
제문처럼, 격문처럼 시 한편
제주작가회의 시화전 작품지난해까지 포함 110여 편
어떤 물음에 대한 답이다. '그건/ 무엇보다 스스로 히틀러가 되고 이승만이 되었기 때문이다/ 총이라는 완장 그 무기의 권력에 자신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학살의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아무런 죄의식 없으니 반성하는 놈 하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것들이 대낮에도 버젓이 준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훈 시인의 '어떻게 해서 그런 잔인한 학살이 있었느냐 하면,' 이란 시의 한 대목은 오늘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그날을 말한다.
김경훈 시인처럼 제주 작가들은 제문(祭文)처럼, 격문(檄文)처럼, 때론 다듬어지지 않은 성명서나 삐라처럼 해마다 멈추지 않고 4·3이라는 시 한편을 써왔다. 그 시들은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의 첫 삽을 들때부터 그곳 정문에 걸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집합 행사에 제약이 따르는 올해도 시기만 조금 늦춰졌을 뿐 어김없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제주작가회의(회장 강덕환)가 8월 31일까지 열리는 4·3 72주년 시화전 작품을 모은 창작집을 엮었다. 제주4·3추념시집 '흩어진 신발을 모아 짝을 맞추는'이다.
이 시집엔 지난해 시화전 작품을 포함 시인 74명이 내놓은 110여 편이 실렸다. 문학단체를 달리하는 도내외 작가들이 제주의 4월이 전하는 사연을 노래했다.
지금 우리가 제주 오름, 숲길, 동백 너머에 숨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건 탄압을 견디며 4·3을 발화해온 덕이다. 그 노정에 4·3을 문학에 담아온 제주 작가들이 있었다. 4·3 당시 60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학살터 '도령마루'가 70년을 넘긴 지난해에야 이름을 바룬 일도 그들의 공이 컸다. 혹자들은 '이젠 지제(止祭)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타박하지만 4·3 흔들기가 계속되는 현실에서 4·3 시를 '진설'할 수 밖에 없다.
제주작가회의는 시집 서문에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경위나 규모야 다를 수 있겠지만 방방곡곡 어디든 4·3과 비슷한 아픔을 겪지 않았던 곳이 있었던가"라며 "그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도록 시인들이 마다않고 부조하고 보시했기에" 시화전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파우스트. 비매품.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