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하루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공평하다. 아침형 인간을 택하든 올빼미족으로 살아가던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그 자유 안에서 시간은 거짓 없이 흐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늘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일이 너무 바쁘고 먹고 사는 일에 지쳐서 시간의 여유가 없다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과 여가를 균형 있게 조율해서 만족스럽게 하루를 채워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거나 편한 일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쓰는 일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일이지만 현대인들은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을 혹사 시키며 산다. 온전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데 우리는 너무 게으르거나 너무 부지런해서 한 잔의 차 시간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기운 없고 기력이 소진된 많은 이들이 매일을 공유하고 있으니 현대 사회의 활력은 모두 영양제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꽤 오래전부터 '슬로우 라이프'와 관련된 문화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소개되고 있다. 마치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가이드처럼 책과 노래, 드라마와 영화들이 안전하고 안온한, 자연에 좀 더 가까운 삶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 생활에 지친 20대 여성이 어머니가 살던 빈 집으로 들어가 사시사철을 자급자족하며 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철음식을 곱고 풍성하게 담아낸 근사한 요리 영화이자 스스로를 잘 먹이고 매일을 잘 살아가는 일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 혜원은 곱게 떡을 쪄내고 직접 담근 술을 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꽃을 고명처럼 올린 파스타 한 접시를 그림 완성하듯 만들어낸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다소 느리게 흘러가는 이 영화는 한 끼를 위해 들이는 노력의 시간이 사실은 굉장히 흥미로운 수련의 시간임을 천천히 아름답게 보여준다.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는 각각 90살, 87살이 된 노인 부부의 인생을 담고 있다. 60년 이상을 함께 동반자로 살아온 부부의 일상은 큰 소리 하나 나지 않고 순조롭게 흘러간다. 도시의 한 켠에 자신들만의 집을 짓고 텃밭과 숲을 만들고 가꾸는 그들의 일상은 세차지 않은 바람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낙엽은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비옥해진 땅에서는 과일이 잘 여문다 그러니 우리가 후대에 물려줘야 할 진짜 유산은 좋은 흙이다'라고 말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삶의 뿌리가 내릴 토양의 귀중함을 새삼 고민하게 만든다.
최근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의 자연의 삶을 그리워하고 소망하고 있는 추세다. 서울 인근의 작은 도시들에는 세컨드 하우스 개념의 전원주택들이 지어지고 있고 일터에서의 소임을 다한 이들이 그 곳에서 인생의 후반기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또한 젊은 층은 스스로의 공간을 온전히 꾸리기엔 경제적으로 벅찬 대도시를 떠나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제주나 속초 등지에 자신이 머무를 공간을 찾고 있다. 모양새는 조금씩 다르지만 많은 도시인들이 마음 속에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빽빽한 도시의 빌딩 숲에 지친 이들이 나무 한 그루를 더해가며 진짜 숲을 만들고 싶어하는 건 긍정적인 징조다. 그리고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들을 잘 여물도록, 온전히 익히는 일은 평생의 숙제일 것이다. 하루를 익히는 법을 배워가며 평생을 살아가는 일도 근사한 삶일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