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한라칼럼] 기후위기와 농부

[송창우의 한라칼럼] 기후위기와 농부
  • 입력 : 2020. 08.11(화)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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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비가 내려도, 날씨가 추워도 꼭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밭에 가야 마음이 편하다. 올해도 장마가 시작되자 산과 들에 자라는 나무와 풀들은 하루가 다르게 잎사귀를 키워내 마치 전쟁에 나서는 군함의 대포처럼 하늘과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밭에도 비가 그치면 뽑아냈던 잡초들이 '언제 우리 맸냐?'는 식으로 더 왕성하게 자란다. 때도 없이 내리는 장맛비는 농부를 밭 한구석에 지은 작은 천막으로 몰아낸다. 비 창살 사이로 바라보는 밖의 풍경은 비와 습기를 가득 품은 먹빛 같은 시꺼먼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하늘과 맞닿는다. 그 푸름 속에 한 올 한 올 꽃잎은 치켜세워 하늘로 향할수록 연분홍 꽃을 피운 자구나무(저녁이 되면 퍼졌던 잎사귀가 오므라져서 부부금슬을 상징한다고 합환수(合歡樹)라고도 부른다)를 보는 게 짜증나는 장마철의 낙이라면 낙이다.

올해 제주에 머물면서 몸집을 키울 대로 키워 기상관측 사상 가장 길었다는 이름까지 얻은 장마는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그 몸집과 이름 값으로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장마전선이 가로로 누워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과 서울 경기도, 강원도, 북한을 훑고 지나며 엄청난 장맛비를 쏟아내더니 이번에는 장마전선을 세로로 세워 마치 씨줄과 날줄로 천을 짜듯 한반도 어느 한 곳 성한 곳 없이 한반도를 물로 짓누르며 쓸어내리고 있다. 장마가 아니라 수마(水魔)다.

계절적 관점에서 보면 여름과 대척점에 있던 지나간 겨울에 눈이 내린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겨울다운 날은 얼마나 됐을까. 봄에는 봄 같은 날이 얼마나 있었을까. 지금까지는 춥고, 덥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여기고, 걱정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요새 왜 이리도 걱정이 될까. 나이 드신 어른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이게 근심하고 슬퍼할 일이 아닐 수 있을까. 그리고 겨울과 봄을 거치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어디선가 나타나 사람들의 간격을 떼어놓는 것은 물론 집안에 가둬놓더니 이제는 쏟아지는 장맛비로 산을 쓸어내려 고립시키고, 도로는 수로로 변해 자동차를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 아까운 생명을 가져가고 있다. 들려오는 소식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옆 나라 중국과 일본 동북아 3국은 물론 지구 반대편과 시베리아 할 것 없이 지구 한쪽에서는 물, 다른 한쪽에서는 불로 난리다. 지구는 물과 불과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몸부림치며 울부짖고 있다. 현재의 기후위기의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기에 그렇다.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서 농사만 짓지 뭐 날씨는 뭐고, 기후 때문에 걱정이냐고 나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이 지구는 우리의 후손들도 살아가야할 공간이다.

제주엔 장마가 지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7년을 산다는 매미가 6년 11개월을 땅 속에서 생활을 접고 빛이 드는 세상으로 나왔다. 수컷은 천적들의 노림에도 단 1개월 남은 일생을 혼신을 다해 암컷을 부르고 있다. 후손을 위한 매미의 울음은 우리를 되돌아보라는 절규인데도 우리는 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송창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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