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돌·한라산의 신 주제로
교사 출신 홍죽희·여연 집필신화에 스민 지금 우리들 삶
30여 년 영어교사로 재직했던 홍죽희씨, 국어교사였던 여연씨. 동갑내기 벗인 두 사람이 사진가 김일영씨와 동행해 제주를 걸으며 마주한 신들의 이야기를 '제주, 당신을 만나다'란 이름으로 묶었다.
이 책은 주제를 정해 한라산 자락과 바닷길을 둘러보며 신을 만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세 사람은 여유 있게 답사 일정을 정해 길을 떠났고 그 덕에 더 깊이 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제주 신화 테마길이나 거기엔 이 섬에 뿌리내렸던 선인들, 지금 제주 사람들의 삶이 스며 있다.
홍죽희씨는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느끼다' 주제 집필을 맡았다. 바닷가 마을에 좌정하고 있는 미륵신을 중심으로 돌로 시작해 돌로 생을 마무리했던 제주 사람들의 신앙을 살폈다.
제주 미륵돌들은 대부분 땅이 아닌 바다에서 올라왔다. 깊은 바닷속에 있다가 누군가에 의해 건져올려진 먹돌은 마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난한 민중들에게 희망의 신앙이 됐다. 김녕 서문하르방당, 화북 윤동지영감당, 신촌 일뤠낭거리 일뤠당, 함덕리 서물당에 그같은 미륵돌이 있다. 윤동지영감당은 복과 재물을 안겨주고, 서문하르방당 미륵신은 아들을 낳게 하는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김일영씨가 촬영한 김녕 서문하르방당 미륵신으로 바다를 향해 좌정해 있다.
동회천 화천사 오석불, 마씨 미륵당, 고내봉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 미륵불도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 담긴 절실한 소망을 드러낸다.
여연씨는 '한라산의 신들'을 주제로 글을 썼다. 한라산에서 솟아난 신 하로산또들이 숨쉬는 신당을 찾아 사냥 습성을 버리지 못해 부인에게 쫓겨난 소천국, 강풍이 휘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신의 노여움을 떠올리게 하는 광양당신, 바다와 강남천자국을 평정한 영웅신 궤네기또, 도두봉 오름허릿당 하로산또 등을 되살렸다.
신앙 현장을 누빈 두 사람은 개발이나 마을 신앙공동체 약화로 신당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훼손되는 걸 아쉬워했다. 제주 신당이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는 안쓰러움에 그들은 오늘도 길을 나선다. 알렙. 1만8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