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 눈으로 본 전쟁 기록
전후에도 여전한 차별·배제
산호초의 섬 오키나와. 눈이 시린 푸른 바다를 간직한 이 섬에 제주4·3처럼 핏빛 광풍이 불었다. 도망칠 곳 없는 좁은 섬 안에서 벌어진 일본과 미국의 마지막 지상전은 오키나와 주민 4분의 1에 해당하는 십수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 참혹했던 현실을 몇 년 뒤에 증언한 책이 있다. 오키나와 전투를 기록한 원전(原典)으로 불리는 '철(鐵)의 폭풍'이다.
'제국의 버림받은 섬, 오키나와 83일의 기록'이란 부제를 단 '철의 폭풍'엔 미군이 상륙 이후 일본군 수비대가 궤멸해갈 때까지 주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오키나와 전투의 전반적인 양상이 그려져 있다. 당시 오키나와의 유일한 신문으로 전쟁의 온갖 고통과 싸우며 방공호 안에서도 신문을 발행했던 오키나와타임스의 전 사원이 혹독한 전쟁의 실상을 세상에 빠짐없이 알려야 한다는 책무를 통감하고 편찬팀 3명을 구성해 종전 4년째인 1949년 5월부터 1년의 준비 끝에 이 책의 초판을 냈다.
1945년 3월 오키나와 본섬 주변에 집결한 1500척의 미군 함대가 대대적인 포격과 폭격을 퍼부으며 시작된 오키나와 전투는 6월까지 계속된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첨단 무기가 땅 위로 난무하는 동안 비전투원인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군에 의해 총알받이로 내몰렸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옥쇄(玉碎)를 강요당했다. 미군과의 전투에서 오키나와 주민들이 우군으로 여기며 신뢰한 일본군은 오키나와 사람들을 지켜주기는커녕 참호에서 쫓아내고 학살했다. 주민들이 광기어린 '집단 자결'을 택하는 장면은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다.
전쟁이 끝난 뒤 오키나와는 1972년까지 27년 동안 미군정의 지배하에 있었고 섬 전체가 기지화된다. 1972년 일본에 편입되었으나 우경화한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군기지도 여전하다. 오키나와에 과연 전후(戰後)가 있느냐고 묻는 이유다.
오키나와타임스 기자로 집필을 맡았던 마키미나토 도쿠조는 이 책에서 "50년째의 후기를 쓰는 이즈음에도 오키나와는, 오키나와인은 잠시도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앞으로 '철의 폭풍'을 읽으실 독자들은 미군 기지의 재편 강화와 관련 있는 과거의 오키나와 전투를 추억이 아닌 현실로 상상하며 받아들이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고 했다. 오키나와타임스 편집, 김란경·김지혜·정현주 옮김, 정선태 감수·해제. 산처럼. 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