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으로 향하는 계단 입구에 금줄처럼 형광색 줄이 걸려 방문객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코로나19 휴관'이라는 팻말이 그 이유를 말해줬다. 얼마 전 찾은 서귀포시 대정읍의 제주추사관. 지난해 12월 18일부터 휴관 연장을 거듭하고 있는 곳이다. 최근에 홈페이지에 공지한 내용대로라면 "정부의 코로나19 특별방역 강화대책 추가 연장"에 따른 것으로 2월 8일이면 휴관 기간이 53일째에 이르고, 예고된 2월 14일까지 채우면 59일 동안 문을 닫게 된다. 1월부터는 야외 추사유배지를 개방하고 있지만 실내 전시실은 감연 확산과 예방을 취지로 2개월 가까이 휴관 중인 실정이다.
1종 미술관인 제주추사관은 제주 지역 7개 공립미술관 중 하나지만 유독 휴관이 길어지고 있다. 관리 주체인 제주도세계유산본부 측은 자체 결정으로 이뤄지는 조치라고 했는데, 제주도립미술관 등 6개 공립미술관과 운영에 차이가 난다. 다른 공립미술관은 사전예약제로 시간대별 입장객 수를 최대 30명까지 두는 등 시설 규모나 동선에 맞게 입장 인원을 조정해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어서다. 이는 제주추사관 학예직이 한동안 공석이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스마트 박물관·미술관 공모에도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은 상황까지 더해져 제주도 미술관 정책의 부재를 드러내는 사례로 읽힌다.
제주는 1987년 전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인 기당미술관이 개관하는 등 일찍이 공립미술관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공립미술관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행·재정적 뒷받침은 미약해 보인다.
2020년 1월 기준 문체부가 펴낸 '2020 전국 문화기반시설' 현황에 담긴 미술관 운영주체별 평균지표를 보자. 공립미술관 1개관당 평균 학예인력 수는 5.47명이지만 제주는 대부분 1~2명이고 제주도립미술관(제주현대미술관 포함)이 6명으로 평균을 간신히 웃돌았다. 소장자료 수는 평균 986점인데, 제주는 그 수치를 뛰어넘는 공립미술관이 없었다. 2021년 제주도 본예산에서도 공립미술관 소장품 구입비가 깎이거나 천차만별인 점을 보면 소장자료 수의 개선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평균지표와 별개로 조사연구 보고서 발간 횟수를 보더라도 제주 지역 공립미술관은 0회를 나타냈다. 학예직 역량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고 있는 걸 보여준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도심만이 아니라 저지, 대정에 각각 흩어진 공립미술관이 지역과 밀착된다면 읍·면 문화공간 부족 현상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공립 문화기반시설이 주도적으로 나서 사설 공간들과 협업하고 콘텐츠를 나누는 일이 확대된다면 말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10억원을 투입해 올해 처음 민간 문화예술공간의 기획 발굴과 운영 지원을 취지로 '문화예술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데, 제주도의 이른바 '문화예술섬' 정책이 '자기 사람'만 챙기는 식이어선 안 된다. 공립미술관의 시스템을 다지면서 그 저변을 넓혀가는 방식에도 무게를 실어야 할 것이다. 5개 도립예술단 활성화를 위해 제주도가 소매를 걷어붙였듯, 7개 공립미술관도 소장자료, 전시와 프로그램, 인력 운용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