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에 '서천꽃밭'이 있다. 그 꽃밭에는 온갖 꽃들이 자라고 있다. 죽어야만 갈 수 있으나 저승계도 이승계도 아닌 서천꽃밭의 꽃들은 광천못에서 기른 물로 자라나는데, 광천못에서 물을 떠와 꽃들에게 주는 것은 죽은 아이들이다. 이승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한 꽃들이 피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검뉴울꽃'이다. 검뉴울꽃은 '시들어서 죽어가는 꽃'이다. 현재 새별오름이 그렇듯 제주오름이 여러가지 이유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승에서 살아있는 '갯취'를 보려면 예전엔 새별오름으로 갔다. 키가 1m 정도 자라며 5월경 부터 샛노란 꽃이 핀다. 여름에 접어들 무렵 갯취군락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 새별오름이었다. 상상해보라. 얼마나 멋있겠는가. 하지만 20여년전부터 이곳 새별오름은 들불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이른 봄마다 불타고 있다.
고려 공민왕은 1374년에 최영장군에게 명하여 목호의 난을 평정하게 한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투를 벌인 곳이 '어림비'라고 불리우는 새별오름 일대이다.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덮고 간과 뇌가 땅을 가렸다."라고 기록될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이곳엔 그런 역사의 기록을 아는 이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하나의 관광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칼과 창이 아닌 불로써 자연과의 치열한 싸움을 매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피해자는 다름아닌 새별오름에 사는 생명이다. 그중에 갯취가 대표적인 피해자의 상징이다.
갯취는 환경부에서는 한국특산종으로, 산림청에서도 자생지가 많지 않아 희귀식물 및 특산식물로 지정하여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또한 2005년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멸종위기·희귀식물 특별전'을 개최하여 갯취의 중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행정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갯취의 군락지가 있는 새별오름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 갯취군락지는 없어지고 드문드문 겨우 살아갈 뿐이다. 이처럼 들불축제에서 배제되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기름과 화약을 써서 불질러 놓고 거기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다. 오름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들불축제는 이미 죽은 축제이다.
지난 20여년간의 축제기간동안 새별오름의 식생 변화조사, 토양오염조사, 생태계변화, 새별오름과 그 주변 지형지질의 변화 등을 조사해 보았는가. 오름은 살아 있는 생물이기에 이런 조사가 반드시 주기적으로 필요하다. 2019년에 제주시에 확인한 결과 전무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2021년 현재 또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럴진대 그들이 내세우는 자연과의 공존이란 그저 형식적인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자세히 찾아보면 식생조사를 한 적이 있다. 행정이 아닌 제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이다. 2004년 '화입에 의한 새별오름의 식물상 및 식생 변화'라는 제목의 논문이었으며 2009년 제주대학교 생물학과에서 '새별오름에서 초지 화입에 의한 식생 변화 연구'라는 논문이 제출되었다. 잠시 일부 인용하여 보자.
"생태학적 측면에서 보면 산불(Forest fire)은 탈산림화, 생물 다양성 감소,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 토양 영양물질 소실, 홍수 피해 증가, 국지 기상의 변화, 산성비와 대기오염 증가,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로 기후변화 초래 등의 영향을 끼칠 수 있다(산림청, 2009). 하지만 화입이 농경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병해충의 방제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관광 이벤트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다. 새별오름에서 건조한 시기의 화입은 지표면의 구엽이 완전히 제거시켜 토양의 건조를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토양 침식을 일으킬 뿐만아니라 화입시에 집중적인 인화물질이 투입된 지역은 지표면의 사막화도 발생되고 있어 출현 종의 중요치 변화는 더욱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토양의 물리적 변화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적절한 화입 시기와 주기를 조절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새별오름 화입지의 현재 식생을 유지시키고 식생 복원을 위한 토양의 물리적인 특성과 적절한 화입 시기와 주기를 조절 할 수 있는 연구가 수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라고 하였다.
새별오름의 재앙을 범추기 위한 종 다양성 조사해야
결과적으로 새별오름의 들불축제는 식물의 종 다양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입으로 인한 식생과 지질이 어떠한 변화로 이어질지 생태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관찰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제주도는 지난 20년간 화입으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를 조사한 적이 없다. 오름은 살아 있는 생물이다. 오로지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새별오름의 재앙을 멈추는 방법을 찾는 것은 제대로 된 기초조사부터이다.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새별오름 전경.
새별오름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와 그 속에서 소리없이 죽어가는 생명이다. 어떤 말과 글로서 새별오름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들춰낼 수 있을까?
멀리서 바라보는 능선은 고운 잔디와 억새로 어우러져 신비하기까지 했던 오름,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말들도 여유가 넘치던 오름, 노란 갯취가 가득했던 오름, 고운 노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던 오름, 한여름 잔디에 누워 초롱한 별을 바라보던 오름, 이런 오름이 '새별오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녁하늘 샛별과 같이 외롭게 서있는 오름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어떠한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의 시작이 있는 곳이 새별오름이다. 새별오름의 급격한 변화는 21년전에 발생한다. 1997년에 시작한 들불축제가 2000년부터 새별오름으로 고정됐다. 그동안 제주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30여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1970~80년대초 까지만 하더라도 농가에서는 소를 기르며 밭을 경작하고 오름에 말과 소를 방목하며 살았다. 당시 방목을 맡았던 말테우리와 쉐테우리는 중산간지대에 양질의 목초지를 찾아 다니며 풀을 먹였다. 이때 이 지역의 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목초지에 불을 놓아 질좋은 새풀이 돋아 나도록 불놓기를 했는데 이를 제주어로 '방애놓다'라고 했다. 이러한 선인들의 풍습을 현대적감각에 맞게 디자인했다고 한 것이 지금의 들불축제이다. 벌써 23번째 하고 있는 것이다. 축제광장과 주차장을 만들기 위하여 주변초지를 매입하고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축제가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울 또 다른 프로그램이 계속 등장한다. 보도자료에 보면 1회부터 22회까지 들불축제 방문객은 약 500만명쯤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말 괄목할만하게 성장한 들불축제이다.
새별오름의 치유에 대해 관심이 없는 행정당국
제주시는 들불축제가 끝나면 매년 평가보고회를 개최한다. 매년 반복되고 있는 접근성문제, 노점상통제문제, 여기에 따른 관광객의 불편함, 먹거리와 살거리의 바가지 문제등을 거론하며 관계자는 항상 원론적인 대답으로 "최종 평가 보고회에서 나온 문제점과 개선의견을 종합 정리하여 최종 평가보고서에 반영함은 물론, 지속적으로 해결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매해마다 밝히기만 한다. 이렇듯 들불축제는 그들만이 기획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평가회에서 빠진 것이 있다. 바로 객체인 사람이 아닌 주체가 되는 '새별오름'이다. 새별오름이 아프다고 한번이라도 진단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화입 전후의 새별오름 환경과 생태계의 변화를 조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감성적 욕망 사이를 넘나들며 축제를 즐길 수 있지만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는 새별오름은 어디에서 치유를 받고 살아남아야 하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뿐이다.
제주도의회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드림제주21'에서 '들불축제'에 관해서 이런 글을 실었다. 「'들불축제'는 역사와 문화 왜곡, 청정 자연 파괴 그리고 생태계 교란이란 점에서만도 문제가 심각하다. 오래전 목축과 관련해서 들에 불을 놓았다고 해서 오늘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적 추이와 문화형성에 근거해서 상징적 재현만으로도 충분한 일이다. 청정제주, 탄소제로를 외치는 오늘 제주도의 기치 아래 오름 경사면에 온통 기름을 쏟아 붓고 불을 질러대는 일은 아무래도 광적인 주술이며, 자연을 향한 파괴와 테러라고 할 수밖에 없다. 70년 전 유수암, 노꼬메 그리고 새별오름 주위가 소거작전으로 초토화되었던 걸 아직도 상처로 가지고 있는 제주도민들에게는 얼마나한 상심이냐. 축제가 도민들의 정서 표출의 장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는 또 무엇인가.」
제주자연을 대상으로 축제를 할 경우에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자연 그 자체이다. 축제가 자연을 변형시키는 행위가 되고 그 행위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결국 제주자연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억새가 무성하던 새별오름은 이젠 장작더미와 초지를 가져와서 쌓아놓고 불을 지른다. 거기에 막대한 화약을 사용하며 심지어 기름을 마구 퍼부어 불을 지른 적도 있다. 비환경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이며 최악의 환경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들불이 축제를 넘어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를 위한 축제도 아니다. 이것은 환경재앙이다.
환경을 훼손하는 축제는 환경재앙
자연은 대체 불가능하다. 제주의 오름이 그렇고 곶자왈이 그렇고 모든 자연이 그렇다. 인간은 자연을 너무나 쉽게 파괴할 수 있지만 그 파괴의 댓가는 스스로 자연을 무너뜨리거나 인간에게 아픔을 그대로 돌려 준다.
축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제주도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만 특정한 장소로 사람들이 몰려가 환경을 파괴하는 일은 제주도의 진면목을 흐리게 하는 정책이며, 이를 통해 축제의 이름을 부여했다면 제주도의 자연가치를 치장과 과장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축제의 화려함보다 제주의 자연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제주의 정체성을 보존하며 유지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
새별오름의 면적은 약52만㎡ 정도된다. 이중에 불태우는 면적은 약10만㎡이다. 하지만 축제때 새별오름 앞에 있는 초지는 지속적으로 주차장으로 바뀌었고, 노점상, 공연장 등을 포함한 부대시설 면적은 30여만㎡ 이나 된다. 일년에 한번하는 축제를 위하여 불태우는 면적 3배정도를 영구적으로 훼손하는 행정이다. 그 많은 면적이 4일간의 축제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며 초지를 사람을 위한 편의시설물로 계속 바꾸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새별오름과 맞닿아 있는 남쪽에 새별오름보다 더 큰면적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면적이 무려 약 70만㎡이다. 여기에는 휴양문화, 운동오락, 복합시설, 숙박, 공공편익, 기타시설지구 등 자연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후면 새별오름에 올라가면 자연이 아닌 거대한 복합관광단지를 어쩔 수없이 봐야만 한다. 골프장, 주차장, 복합관광단지로 새별오름의 3면은 막히고 겨우 오름 뒤쪽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새별오름의 주변 자연환경마저 관광객을 위한 시설로 계속 바뀜에 따라 새별오름의 생태계는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
새별오름 주차장 개발현장.
이렇게 들불축제는 전혀 다른 쪽으로 가고 있다.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새별오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오름불태우기의 근복적인 의미는 퇴색한 지 오래며 불꽃놀이로만 여기고 있다. 이는 단순히 들불축제를 '볼거리'로 만들어 관광객이 많이 오는 것이 축제의 성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자. 자판기커피 마시 듯 쉽게 접근하고 버리는 것이 자연에서의 축제인가. 들불축제를 성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새별오름의 환경파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많은 관광객이 온다는 결과가 새별오름의 훼손을 정당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크나 큰 착각이다.
2020년은 COVID-19로 인해 들불축제가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2019년 들불축제가 끝난 새별오름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축제가 끝나고 한달이 지난 현장은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으리라는 생각과 달리 출입통제, 현장복구상태, 생태복구등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폭죽을 쏘아 올렸던 자리, 사람이 머물렀던 자리, 불을 질렀던 자리, 차가 다녔던 자리에 어김없이 큰 상처를 남겼다. 여기에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새별오름 2019들불축제 개최전.
타버린 곳은 발가벗겨져 있다. 이런 곳은 비가오면 물과 흙의 압력으로 토사가 쓸려 내려가 골이 생기기도 한다. 불에 태울 나무등을 나르며 만들어진 길은 관광객들이 지름길인 줄 알고 올라다녀 이미 중앙으로 길이 나있다. 타다남은 것들, 쓰레기들, 형체를 알 수 없이 녹아버린 것들, 화약 잔재물, 아직도 새별오름에 박혀 있는 철근, 쓰러져 방치된 소화전, 폭약이 터져 패어버린 곳, 훼손된 정상부, 어지러이 날아간 탐방로매트, 속살이 드러난 탐방로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렇듯 새별오름에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아니 매년마다 새로 각인될 문신이 있다. 마치 말이나 소의 등에 낙인을 찍듯, 거대한 불쏘시개로 지져버린 듯, 커다란 생채기가 있는 것이다.
축제가 끝나면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것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축제를 만드는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다시 되묻고 싶다.
새별오름 2019들불축제 개최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 맞나
제주도가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문구는 다름이 아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이다. 인위적으로 화약을 터뜨려 불을 지르는 행위를 해마다 지속하는 방식이 과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일까. '역사'와 '축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자연과 함께 살았던 제주 조상들의 목축 문화와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2월 중순에 2021년 들불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새별오름 현장을 다녀 왔다. COVID-19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점에 청정한 오름에서 환경을 보호하며 준비하리라던 생각은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새별오름 가운데를 자르듯 설치한 작업용 모노레일 주변과 글자들 주위로 수많은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다. 바짝마른 초지를 쌓아올리면서 담배를 피운 흔적이다. 자연에서 공사하면서 어찌 담배를 피울 수 있는가. 이는 작업자의 의식도 문제지만 감독을 맡고 있는 행정의 책임이 더 크다. 이외에도 각종 쓰레기, 지난번 축제때 사용하다 아직도 치우지 않은 잔재물 등 찾고자하면 얼마든지 있다. 제주시에서 준비하는 과정이 이럴진대 어떻게 자연과 공존한다는 것인가. 또한 오름에 중장비를 동원하여 공사를 하고 있었다. 새별오름도 답압에 의하여 훼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중장비로 오름에서 작업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푸드트럭 남쪽지점에 거대한 우수관이 설치되어 있다. 그 끝에 가 보았다. 아무런 여과장치도 없이 개방되어 있다. 그 주변은 쓰레기의 무덤이 되고 있다. 새별오름 앞에 조성된 주차장에 떨어진 모든 쓰레기들이 여기로 모여 들고 있다. 주변을 둘러 보았다. 온갖 쓰레기와 온통 시설물 뿐이다. 겉으로 보여주는 불꽃의 화려함 뒤로 추한 것은 감춰놓고 자연환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행정의 또 다른 얼굴이다. 오로지 들불축제를 하기 위한 것 뿐이다. 어떠한 것도 새별오름을 위한 것은 없다. 더 이상 이런 흐름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새별오름 중장비 공사 현장.
이런 현상은 지난 12월에 '오름가꾸기 자문위원회' 회의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제주시에서 이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들불축제를 하기 위하여 새별오름의 자연휴식년제를 연기하거나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망가져 가는 새별오름을 보전하기는 커녕 자연을 이용하여 관광상품으로 팔겠다는 의도를 명백하게 표출한 것이다. 만약에 들불축제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면 먼저 새별오름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 언제까지 환경을 뒤로 제쳐놓고 축제만 할것인가. 2021년 들불축제가 끝나고 난 뒤 새별오름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참담한 심정이다.
제주의 생태파괴는 우리의 미래를 없애는 것이다. 자연과 공존의 중요성을 외치지만 인간중심의 공존일 뿐이다. 여기서 공존이란 각자가 사는 삶이다. 즉, 같은 곳에 사람도 살고 자연도 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공격해야 만이 서로가 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공존대신 조화를 선택해야 한다. 조화는 서로에게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과장보다 조화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도시에서도 건물의 크기, 높이, 색깔 등이 주변풍경과 조화를 이루면 아름답게 보인다. 하물며 자연에서는 그 이상이다.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모아 엮은 공동체와 자연이 만든 피조물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 흔적들은 그 자체만으로 큰 감동을 안긴다. 제주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천천히 음미하듯 가슴에 담는 것은 제주사람이 누릴 수 있는 건전한 사치다. 자연중심의 조화로 바뀌어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제주의 미래가치가 '자연' 이기 때문이다.
새별오름 전경.
생태파괴는 미래는 없애는 것..불놓기 다시 생각해야
자연은 인간 삶의 터전이며,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을 제공한다. 그러나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을 변화시켜나가며 새로운 생활환경을 만들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자연을 변화시킨 새로운 생활환경 속에서 살아 가고 있다. 워싱턴대 HINTS(Human Interaction with Nature and Technological Systems Lab)연구소의 칸교수는 "자연이 인간의 육체와 심리적 웰빙은 물론 창의력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또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 속에서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한 "문제는 최근의 자연파괴 현상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없음에도 자연을 지배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급격한 개발과 도시화로 자연을 변화시키는 행위는 인간이 자연을 조화롭게 접할 기회를 갈수록 줄어들게 하고 있다. 연대감과 공동체가 없고 권리와 자유의식만 팽배한 사회는 차갑고 고독하다. 사회 전체의 조화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적절한 균형과 조화는 좋은 삶과 좋은 사회의 근본 조건이 되듯이 자연과의 조화는 인간 삶에 행복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별오름에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즐기고 있는 축제가 자연과 새별오름을 위하는 축제가 아니라면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도민과 관광객의 의식이다.
우리는 왜 불놓기를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자연에서 축제는 불꽃의 화려함으로 달려서는 안된다. 감동은 불꽃이 사그러질 때까지 짧은 순간 뿐이다. 새별오름은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망가져 버린 자연환경을 섣불리 매만지려는 시도가 더 큰 환경재앙을 낳게 돼 버린 시대에 자연은 불치병에 걸리고 있다. 환경은 목표 지향적인 인간이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새별오름에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생명이다. 생명이 없는 새별오름은 부질없는 영혼과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바람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새별오름과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이 평안하기를 바라며 제주오름이 서천꽃밭에 있는 '검뉴울꽃'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김홍구/제주오름보전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