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시조로 엮은 신작 시조집 '길 하나 돌려세우고'를 펴낸 제주 오승철 시인.
단시조 모은 ‘길 하나…’
‘다시, 봄’에서 ‘대설’까지순환의 계절 속 산고 담아
제주 오승철 시인이 신작 시조집 '길 하나 돌려세우고'를 묶으며 꺼내 놓은 건 단시조였다. 그는 그것을 "시조의 종가"로 칭하며 "허랑방탕, 여기까지는 왔다"고 했다. 겸양의 표현이면서 이제야말로 새길에 들어서듯이 시조의 본령에 다가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저 아득한 시간을 넘고 넘으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시조는 3장 6구 12음보의 율격을 갖춘 우리의 전통 정형시를 일컫는다. 정해진 틀 안에서 부단히 언어를 깎고 다듬는 노고 끝에 완성되는 것이 본래의 시조라고 할 수 있겠다.
수다스러움 대신 아끼고 아낀 시어를 펼쳐 놓겠다는 이번 시조집은 '다시, 봄'에서 시작해 '대설'로 끝을 맺는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사계절의 순환처럼 제주 땅을 배경으로 시조가 탄생하고 생명력을 이어가는 과정도 그렇지 않겠느냐고 노래한다.
첫머리에 놓인 '다시, 봄'은 다시 우리의 시조로 향해가는 진득한 걸음을 은유하는 듯 보인다. "허랑방탕 봄 한철 꿩소리 흘려놓고/ 여름 가을 겨울을 묵언수행 중이다/ 날더러 푸른 이 허길 또 버티란 것이냐"고 했는데, 시 작업을 둘러싼 고행의 모습 그대로다. 새 생명을 품고 오는 봄의 기운은 수시로 출몰한다. "무슨 일 일어날 지 모르니까,/ 봄이다"('그러니까, 봄')라고 했을 땐, 우린 거기에서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느낀다. 봄은 제주 사람들에게 4·3이 연상되는 시기이면서 한편으론 창작자의 심적 부담을 드러내는 고통의 계절이다. 봄은 때때로 꽃으로 치환된다. 한라산 남쪽에 분포하는 기생성 한해살이풀인 '야고'를 제목으로 붙인 시에선 "여름철/내 노동은/ 종 하나 만드는 일"이라며 꽃을 피워내는 '산고'를 읊는다.
"성산포 가는 길" "무심한 어느 저녁에 이 악물듯 눈이 온다"는 이 시국의 제주가 떠오르는 '대설'로 마무리되는 시조집 곳곳에는 그의 첫 창작집 '개닦이'부터 '시그니처'처럼 등장해온 꿩이 울어 쌓는다. 그것들은 "절 같은 섬에 와서도/ 시끄러워 못 살겠다"('꿩꿩 푸드덕')고 하거나, "그대 무덤가에"('그리운 날') 맴돈다. 시대를 예감하는 문학처럼, 꿩은 우리 곁에 먼저 와 있다. 황금알.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