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시인이 2019년 4월 제주를 찾아 4·3 당시 수용소였던 주정공장 터에서 그 시절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사회평론가 사타카와 대담
현실과 괴리된 자연 예찬들생각할 힘 없애는 노래 경계
일본 사회평론가인 사타카 마코토가 '일본 시단의 거장' 김시종 시인과 대담한 내용을 엮은 '재일(在日)을 산다-어느 시인의 투쟁사'엔 "잠들어 있는 화산이 눈을 뜨는 것처럼 때로는 마그마가 폭발"하는 노시인의 목소리가 있다. 시인은 사타카 평론가와 대화를 이어 가며 일본 내셔널리즘의 풍토에 대한 우려, 시인이 변함없이 취해야 하는 자세,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 일본사회의 차별과 극복, 문학의 전쟁 책임, 우리나라가 하나의 조국이 되어야 하는 이유 등을 역설했다.
제주4·3사건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시인은 대담집에서 그때의 일이 지금도 무거운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고 고백하고 있다. 일본으로 향하기 전 시인은 동네 구장이던 외삼촌의 집 뒤에 잠시 몸을 숨겼다. 경찰관이나 군인을 접대했던 외삼촌은 이를 토벌대 가담 행위로 본 산부대의 죽창에 찔려 죽는다. 시인은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 여겼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제주를 찾은 시인은 비로소 숙부의 가족과 화해한다. 당시 종일 벌어진 진혼굿을 경험한 시인은 "4·3사건과 같은, 말이나 글로 다할 수 없는 끔찍한 재앙은 그 토지의 신이 아니면 진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제주 시내 '아사히구락부'라는 극장에서 봤던 유랑 악단 공연 일화도 전했다. 우리나라 예능이 억압받고 있던 때, 전라도에서 온 예술인들이 우리 음악을 연주했는데 객석에선 욕설이 난무했다. 그 무렵 "눈에 띄게 두드러진 황국소년"이었다는 시인은 그 자리에서 관객이 던진 것을 맞으면서도 노래만은 다 부르고 일어섰던 예술인들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시인은 이 대담에서 자연이 풍요로운 곳일수록 과소화되어 인간이 살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일본의 현실과는 아랑곳없이 그것들이 여전히 아름답다고 하는 단카나 하이쿠도 비판했다. 이는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지난날의 감정으로 빠지게 하면서 생각할 힘을 없애는 엔카에 대한 경계와 닿는다. 시인은 말한다. 시는 결국 현실 인식에 있어서의 혁명이라고. 엔카를 부르지 않는 선택도 인식의 변화이므로 시의 시작과 같다고. 이창익 제주대 일문과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보고사.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