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재단 4·3아카이브에 실린 성산 터진목.
관광지 제주.발리 섬 등
빼어난 풍광 뒤 학살 현장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의 제삿날은 모두 같은 날이었다." 김여정 작가의 '특별한 여행기'는 유년의 기억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많은 사람들의 제삿날이 같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국가 권력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가 대량 학살된 탓이라는 걸 말이다.
한날한시에 저승으로 떠난 이들은 김 작가의 고향만이 아니라 바다 건너 다른 곳에도 있었다. 70여 년 전 섬을 휩쓴 비극을 겪은 제주도 그랬다. 그 여정을 담아 '다크 투어-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를 펴냈다.
그의 발걸음은 전라남도에서 벌어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발리의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말레이시아의 1948년 바탕칼리 학살, 타이베이의 1947년 2·28사건, 제주4·3사건의 현장으로 이어졌다. 아시아 지역의 학살 사건과 그 유족들을 함께 기억하고자 떠난 길이었다.
제주의 그것처럼 '신들의 섬' 발리도 아름다운 낙원 뒤에 아픈 진실이 숨어 있다. 인도네시아 학살에서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곳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유골을 찾을 수 없었지만, 학살자들은 버젓이 사회 지도층으로 행세하고 있는 모습은 그들과 유사한 참사를 경험한 나라들의 과거 또는 미래일 수 있다. 하지만 산과 바다는 그날을 알고 있다. 폭풍이 불어오면 바다 밑에 가라앉은 유골이 밀려오고, 신축 공사장에선 어김없이 유골이 쏟아져 나왔다.
"온통 학살지"인 제주에서는 동쪽 마을인 표선면과 성산읍을 찾아 학살에 얽힌 증언을 들었다. 트레킹 복장으로 중무장하고 모래 해변을 스치는 '올레꾼', 렌터카를 몰고 와서 바다를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고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관광객들 틈에서 작가는 희생자들이 묻힌 모래 구덩이가 아스팔트가 된 오늘을 환기시킨다.
작가와 만난 유족들은 유언처럼 그날의 이야기를 토해냈다. 여기저기에 남겨진 학살 현장은 우리에게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2020년 제28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 동명의 수상작을 깁고 보탠 책이다. 작가는 앞서 같은 해 '그해 여름'으로 제8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에도 당선됐다. 그린비. 1만3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