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제주 김경훈 시집 '수선화 밭에서'

[이 책] 제주 김경훈 시집 '수선화 밭에서'
짙은 꽃내음 ‘역사의 맹지’에 길을 내리
  • 입력 : 2021. 11.05(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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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집 '수선화 밭에서'를 펴낸 제주 김경훈 시인.

꽃과 나무들이 전하는 위로
저절로 향기가 되는 사람들

지천에 흐드러진 그대 사랑




1993년 첫 시집 '운동부족' 자서에서 "나의 시들을 고통받는 사람들과 고통을 근절시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바친다"고 했을 때, 시인의 사랑은 이미 시작됐다. 시인은 오래도록 이 사회가 차별하고 배제해온 대상에 사랑을 쏟았다. 제주4·3에서 강정마을까지 최전선에서 싸웠거나 싸우는 이들에 그의 시가 머물렀다. 그의 서정시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들과 빛깔이 다를 뿐이다.

출판사가 '서정시집'이란 외피를 입힌 김경훈 시인의 '수선화 밭에서'는 전작을 잇되 시선의 확장을 보여준다. 시인은 "부드럽고 품위 있는 언어로 꽃을 노래하고 사랑을 예찬하고 내면의 우주를 돌아보고" "나도 그런 서정시를 쓰리라" 했다지만 이는 서정시란 이름으로 감정만 배설하는 작업에 대한 에두른 비판으로 읽혔다.

시인이 이번 시편에 올린 꽃과 나무들엔 저마다 사연이 있다. "고고히 선연"한 '백동백', "강인한 숙련"의 '복수초', "압도적 자존"의 '해바라기' 등 시인은 '꽃의 위로'를 나눈다. 그것은 삶의 태도에 닿는다. "시류에 때 묻자/ 눈 감고 등 돌려/ 그이에게 가는 길 온통 막히고" "내통이 좌절된/ 회천동 이덕구 가족묘"를 그린 '맹지'를 통해 "역사의 맹지"를 환기시킨 시인은 꽃처럼, 나무처럼 살려고 했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낸다. 그들은 가고 없지만 시인이 사는 곳엔 "저절로 드러나는 꽃자태// 가슴 가득 진정이 터져/ 곱고 노란 향기가 되는"('민들레거나 생강나무꽃 같은') 사람들이 있다.

현택훈 시인의 발문으로 시인의 근황을 접했다. 귤밭에서 닭을 기르고 과수원을 관리한다는 시인은 거처하는 컨테이너를 '창고재(創古齋)'로 부르며 주변에 수선화를 심었다. "꽃내음에/ 취해// 죽어도 좋으리/ 그대 사랑/ 지천으로 흐드러졌으니/ 나 여기에/ 묻혀/ 꽃이 되어도 좋으리"('수선화 밭에서' 전문)라는 시인의 사랑은 꽃으로 더 깊어지는 중이다. 도서출판 각. 1만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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