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는 표제는 거꾸로 우리에게 말한다. 훔쳐 오지 못한 돼지는 모두 죽었다고. '축산업에서 공개구조 된 돼지 새벽이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오늘도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르는 그 돼지들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동물권 단체 직접행동DxE(Direct Action Everywhere) 활동가인 섬나리·향기·은영이 공저한 이 책은 2019년 7월 경기도 화성시의 어느 돼지 농장에서 시작된다. 농장에 있던 수천 마리의 아기돼지 중 구석에 홀로 남아있다 '공개구조'돼 감금시설 밖으로 나오게 된 아기돼지가 바로 '새벽'이다.
동물해방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공개구조'는 종차별주의에 저항하는 방식 중 하나다. 축사 문지방을 넘고 철조망이 쳐진 울타리를 지나 누군가를 철창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행위는 단지 구조된 이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대중으로 하여금 그 역시 재산이 아닌 고유한 삶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새벽이는 예정대로라면 삼겹살, 목살, 항정살, 갈매기살 등 고깃덩어리로 조각나며 생을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새벽이를 위해 초록 울타리로 둘러싼 땅에 그만의 보금자리인 '생추어리'가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단맛 과일을 골라 먹고 산책과 진흙 목욕을 즐기며 '돼지답게' 살고 있다.
저자들은 자신이 부여받은 생을 오롯이 견디고 있는 새벽이를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지만 동시에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직도 무수한 새벽이들이 고기가 될 운명을 안은 채 생식기를 거세당하고 생이빨과 꼬리가 잘리는 등 온갖 학대를 당하며 갇혀있기 때문이다. 한 해 죽는 돼지가 1700만 마리라고 했다. 호밀밭. 1만4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