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죽은 자는 암매장, 죽인 자는 '현충원'

[현장] 죽은 자는 암매장, 죽인 자는 '현충원'
18일 국립대전현충원 방문해 보니
현충탑 뒤 장군묘역 가장 높은 곳에
4·3 민간인 학살 책임 함병선 비석
현장 찾은 4·3도민연대는 '쓴웃음'
  • 입력 : 2021. 12.18(토) 18:39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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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을 비롯해 여·순, 보도연맹 관련 등으로 최대 7000명이 학살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 오마이뉴스 심규상 제공

죽은 자는 알 수 없는 곳에 암매장 됐지만, '죽인 자'는 국립현충원에 묻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4·3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로 꼽히는 함병선 당시 제2연대장(육군대령) 얘기다.

 18일 찾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은 국가와 사회에 헌신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비석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구체적인 규모를 확인해 보니 330만㎡ 대지 위에 13만7000여 위가 영면해 있었다.

 현충원의 구조는 독립유공자와 경찰관, 소방관, 공무원, 의사상자, 장병 등으로 구역이 나눠졌고, 현충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현충탑 뒤편에는 '국가원수 묘역'와 '장군 제1묘역'이 위치해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 안치된 함병선 육군중장. 송은범기자

장군 제1묘역 가장 높은 곳에 낯익은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었다. 바로 4·3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인 함병선 육군중장의 묘였다.

 그는 제주4·3이 한창 벌어지던 1948년 12월 29일 초토화 작전을 펼치던 제9연대와 교대해 제2연대장으로 부임했다. 이 때부터 그는 제2연대를 이끌며 1949년 1월 4일부터 같은해 2월까지 강력한 토벌작전을 벌여 수 많은 민간인 희생을 야기했다. 실제 4·3 최대의 학살 사건인 '북촌리 학살'이 그가 부임하고 있던 시절에 발생했고, 미군에서도 "함병선 연대장은 신분이나 무기 소지 여부를 가리지 않고 '폭도 지역'에서 발견된 모든 사람을 사살하는 가혹한 작전을 폈다"고 기록한 바 있다.

 특히 그는 사법부에서 명백히 '불법성'을 인정한 군법회의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당시 군법회의로 수형생활을 한 인원은 총 2530명에 달하는데, 군집행지휘서와 수형인명부 등 문서에 함병선 제2연대장의 직인이 찍혀 있다.

 이후 한국전쟁 기간 동안 제2사단장과 제1군단장으로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가 소위에서 중장까지 받은 훈·포장은 32개다.

 이날 함병선 중장의 묘역을 찾은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양 대표는 "죽은 자는 어딘지 모를 곳에 암매장 돼 있는데, 죽음의 책임이 있는 인물은 현충원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모셔져 있다"며 "4·3특별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마치 4·3이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야 '완전한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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