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신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김석희 작가가 '김병택문학전집'(국학자료원, 총 10권) 발간에 부친 글을 보내왔다. '김병택문학전집'(한라일보 12월 31일 자)은 2021년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원로예술인지원사업으로 출간됐다.…○
오래전에 번역한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문학비평은 사랑을 빚진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비평의 개념을 바꿨다고 평가받는 세계적인 석학 조지 스타이너(1929~2020)의 '톨스토이냐 도스토옙스키냐'에 나오는 첫 문장인데, 문학비평의 역할에 대한 유명한 선언입니다. 비평이 마치 문학의 선도자인 양 나서서 창작된 작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던 기존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며, 작품이 있기에 비평이 있다(따라서 비평은 창작에 빚지고 있다)는, 비평의 존재이유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촉구한 것입니다.
이 명제를 비평의 태도로 삼아 활동한 이들은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는 김윤식 선생(1936~2018)이 우뚝합니다. 국문학자이자 비평가였던 선생은 생애를 온통 읽고 쓰는 데 바쳤는데, 선생의 성실하기 그지없는 책읽기는 작품(상상력)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바탕에 깔고 있었고, 그 이면에는 "나는 창작자가 될 수 없다"는 회한과 겸손이 스며 있었습니다. 선생은 책읽기를 통한 문학 연구와 비평에 헌신하며 200여 권의 책을 썼고,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파헤쳐 집대성하는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그래서 국문학계에서는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쓰더라도 김윤식을 피해 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스승이기도 한 김윤식 선생을 새해 벽두에 떠올린 것은 지난 연말에 '김병택문학전집'을 받고 느낀 소감 때문입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시행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이 전집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간간이 소식을 들었고, 잘 나와야 할 텐데 하는 염려 섞인 기대감을 안고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막상 결과물을 대하고 보니 기쁘고 찬탄하는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컸던 것은 안도감이었습니다. 우리 제주문학도 이만한 업적을 이룬 문학자-비평가를 가졌다는 뿌듯함 말입니다.
총 10권으로 묶여 나온 전집에는 김병택 교수가 40여 년 동안 문학이라는 벌판을 답사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국문학자로서 한국문학 일반을 탐색한 성과도 유의미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제주대 교수로서 지역 문학에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쏟은 노고입니다. '제주 현대문학사'는 제주문학의 지역적 특수성을 파헤쳐 그 정체성을 확립한 저작으로, 그 바탕 위에서 제주문학은 변방의 소외감을 떨치고 독자적인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제주예술의 사회사'는 김 교수의 폭넓은 관심과 소양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으로, 그 덕분에 제주문학(나아가 예술)은 일단 집대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뒤이은 작업은 김 교수의 제자와 후학들의 몫일 터인데, 그들은 이제 김병택이라는 우뚝한 봉우리 앞에서 한숨을 내쉬게 생겼습니다. "아이고, 저 봉우리를 어찌 넘을꼬?"<김석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