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강덕환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

[이 책] 강덕환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
한반도 남녘 끝 외진 섬 돌하르방처럼
  • 입력 : 2022. 01.14(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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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만에 새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를 펴낸 강덕환 시인.

이념과 생존 등 '불편한 동거'
가난하지만 부끄럽지 않도록

자존을 세우는 제주어의 위로

시인은 섬과 바람, 이념과 생존, 표준말과 제주 말, 분단과 통일이 공존하는 이 땅의 상황을 '불편한 동거'라고 명명했다. 그것들은 때때로 대립하며 이 섬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아니, 현재진행형인 날들 속에 살고 있다. 돌하르방에, 동자석에,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에 그 사연들이 있었다. 시인은 그것들과 마주하며 시를 써냈다. 제주 토박이 강덕환 시인이 그 시들을 모아 10여 년 만에 세 번째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를 엮었다.

시집의 첫머리에 올린 '돌하르방'은 고난의 세월을 헤쳐온 제주인들의 얼굴 그대로다. "한반도의 남녘 끝 외진 섬 그늘"에 "요렇게 꼼짝없이 박혀 사는 몸이지만/ 휘어지거나 비틀리진 않았다"는 '돌하르방'은 "가진 것 없었으니/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어/ 따뜻한 이웃들이 있는 알동네에 산다/ 구석, 구석으로만 내몰리며/ 쫓기듯 살아가는 그들과 벗하면 산다"는 제주인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돌담을 보면'에서는 "바람에 맞서 어찌/ 맺힌 한 없었겠느냐만/ 그럴 때마다 길을 내어/ 이기지 않고 다스리려 했거니"라는 포용이 드러난다.

"가난하지만 부끄럽지 않습니다"('새철 드는 날')는 이 시집에 흐르는 주된 정서로 읽힌다.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어쩌다, 환갑'이란 시에서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먹고사는 일에 쫓겼어도/ 쉽게 타협하지 않았던 것들아!/ 모질게 굴었다면, 미안하다/ 낡아서 쓸모없기 전에 차라리/ 닳아 사라지겠네, 다짐한다/ 참, 설레고 벅차다"라고 했듯, 시인은 "작고 느리지만 꼿꼿이" 다시 걸어가려 한다.

그 길에 제주어는 이 섬의 자존을 세우는 언어로 쓰인다. '아무 쌍 어시'라는 장으로 묶인 10여 편만이 아니라 시편 곳곳에 등장하는 제주어는 차별이 아닌 공감과 위로의 말이다. 4·3이란 참극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 말들 덕이었다. "시민 신냥/ 어시민 어신냥/ 살암시민/ 베롱헌 날/ 이실테주"('그게 그거')처럼. 삶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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