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플러스] 일제에 항거한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며…

[휴플러스] 일제에 항거한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며…
제주 항일운동역사 되돌아보기
해녀항일운동 90주년 의미 깊어
  • 입력 : 2022. 02.25(금) 00: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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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3·1절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올해는 제주해녀항일운동이 90주년을 맞는 해여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제주 항일 운동의 역사를 소개한다.

▶제주해녀항일운동=1932년 1월 12일 세화리 장터에 제주해녀들이 대거 모였다. 제주 해녀들은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응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응한다"며 제주도사(현 제주도지사) 겸 제주도해녀어업조합장 타구치 데이키(田口禎熹)가 탄 차량을 포위하며 시위했다.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시작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 제주항일기념관에 따르면 제주해녀 항일운동은 제주 3대 항일운동 중 하나로 우리나라 최대 여성·어민 운동이자, 1930년대 최대 항일 투쟁이었다.

세화리 장터에 모여든 해녀들을 시작으로 하도리, 종달리, 연평리, 오조리, 시흥리 등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해녀들의 규모가 점점 커져 총 참여 인원이 1만7000여 명에 이르렀다. 또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투쟁하기 위한 집회·시위 횟수도 무려 238회에 달했다.

제주해녀 항일운동은 해녀 권익 보호를 위해 결성한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이 일본의 관제 조합으로 변질돼 횡포를 부리면서 촉발됐다. 당시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은 해녀들이 잡은 수산물의 경매가격을 하향 책정하는가하면 뇌물을 제공한 일본인 상인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해산물을 매입할 수 있게 특혜를 줬는데 이에 분노한 해녀들이 집단 투쟁에 나섰다.

제주해녀 항일운동이 식민지 수탈정책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운동으로 평가되면서 당시 해녀항일운동을 이끈 부춘화·김옥련·부덕량 열사는 올해 1월 제주 출신 중 처음으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김옥련·부춘화·부덕량 열사는 '제주도사의 해녀조합장 겸직 반대, 일본 상인 배척' 등 요구조건을 내밀며 제주도사와 직접 협상했다. 현재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공원에는 세 열사의 흉상과 함께 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조천만세운동=3대 제주 항일운동 중 하나다. 제주시 조천읍에서 1919년 3월 21일부터 3월 24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한독립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참여 인원은 최대 1500여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서울 휘문고보 학생이었던 김장환 선생은 독립선언서를 갖고 고향인 조천으로 돌아와 김시범 선생 등 14명과 함께 만세 시위를 계획한 것이 조천만세운동의 시작이다.

1차 시위 때 김시범 선생 등 14명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태극기를 흔들며 속칭 조천미밋동산에서 행진했고, 이어 조천리, 신촌리, 함덕리에서 수백명의 주민이 합세했다. 그러나 경찰과의 충돌 끝에 시위 주역들이 체포되면서 이날 투쟁은 해산됐다. 이후 체포된 연행자 석방을 주장하며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참여자가 더욱 늘어났다. 그러나 결국 시위 주역 중 상당수가 잇따라 체포되면서 조천만세운동은 끝나고 말았지만 이 운동을 계기로 서귀포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등 제주 항일 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1100도로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들어가다 한라산 둘레길 입구 초입에 다다르면 제주 3대 항일운동 중 하나인 무오법정사항일운동의 발상지를 만날 수 있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은 단순한 종교적 운동이 아닌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선 제주도민의 항일 투쟁이자 국권 회복운동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18년 10월 7일 서귀포시 도순동 법정사에서 승려들이 중심이 돼 법정사 신도와 주민 등 수백명과 함께 집단으로 무장해 10월 9일까지 조직적으로 일본에 항거했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 주역들은 거사 전 '우리 조선은 일본에 탈취 당해 괴로워하고 있다…(중략) 제주향을 습격해 관리를 체포하고 보통 일본인을 추방하라'라는 격문을 법환동, 호근동 등에 돌리는 등 항일운동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 것으로 기록돼있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은 1919년 3·1운동보다 5개월 먼저 일어난 도내 최초의 항일운동이자, 1910년대 종교계가 일으킨 최대 무장항일운동으로 항일의식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의 발상지인 법정사는 '법정악' 능선 해발 680m 지점에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념물로 지정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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