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도 꺾지 못한 용기… 서귀포 토산주민의 '4·3실상기'

군사정권도 꺾지 못한 용기… 서귀포 토산주민의 '4·3실상기'
제주4·3 때 18~40세 주민들 몰살 당해
1960년대 국회에 대거 희생자 신고 후
1987년에는 연명으로 실상기 작성·진정
10일 4·3도민연대 답사서 다시금 '공개'
  • 입력 : 2022. 04.10(일) 16:44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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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도민연대가 10일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에서 '도민과 함께하는 4·3길 답사'를 진행했다. 사진은 양동윤 도민연대 대표가 4·3 당시 토산주민이 희생된 '당동산'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 송은범기자

제주4·3의 실상을 처음으로 알린 마을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아래서도 주민들이 연명으로 '4·3사건 실상기'를 작성, 정부에 진정한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마을 이야기다.

제주4·3도민연대는 10일 '도민과 함께하는 4·3길 답사'를 개최하고 1987년 작성된 '토산리 4·3사건 실상기'를 공개했다.

토산마을이 4·3의 광풍에 휩싸인 것은 1948년 겨울이다. 그해 12월 15일 군경 토벌대는 토산 1·2리 주민들을 향사(공회당·경찰파견소)로 집결시켰고, 18세 이상 40세 이하 남자(102명)들을 모두 결박했다. 또 여자들에겐 달을 쳐다 보라고 한 뒤 처녀(22명)들을 결박했다. 그날은 보름이라 달이 아주 밝았다고 한다.

이후 남성들은 같은 달 18~19일 사이 표선 백사장에서 집단학살 당했고, 여자들은 약 일주일 후에 살해됐다. 당시 여성들이 일주일 뒤에 처형된 것은 토벌대가 이들에게 성적유린을 자행했다는 추측을 갖게 하는 정황이다.

이 밖에도 토산주민들은 마을 내 당동산과 토산봉에서도 살해를 당했다.

이와 관련 지난 2020년 김성현(당시 87세) 할아버지는 "우리 토산에 80세 넘는 이는 나 말고 3명 밖에 없다. (4·3 때) 다 죽어서…"라고 증언했다.

제주4·3도민연대가 10일 공개한 '토산리 4·3사건 실상기' 표지. 송은범기자

참혹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토산마을은 용기를 내 4·3에 대한 진실규명을 외쳤다. 1960년 4·19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국회가 희생자 신고를 접수했는데, 총 1475명 중 10%(148명)에 달하는 인원이 작은 마을 토산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5·16쿠테타로 4·3은 다시 말해서는 안되는 역사가 돼버렸다.

1987년 6월 항쟁 직후에는 김양학(당시 47세·현재 생존)씨 등 주민들이 연명으로 '4·3사건 실상기'를 작성해 정부에 진정했다. 실상기에는 "주민들을 죽음의 소굴로 몰아넣은 이 사건에 대해 이제라도 정부당국은 진상조사를 철저히 진행해 정치적, 인도적 양심과 법적 차원에서 최선의 조치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학살지(당동산, 토산봉 등)와 향사 터, 추모비 등을 답사한 4·3도민연대는 "실상기는 당시 제주대학교 학보사에서 보도한 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제주 섬은 마을마다 4·3 피해지역이고 유적지다. (토산마을을 포함한 모든 피해가 규명될 때까지) 4·3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2002년 12월 토산주민 김성률(당시 71세)씨가 4·3 이후에도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낸 어머니들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모자상. 송은범기자



한편 이날 답사에 앞서 김경훈 시인은 '표선백사장'이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4·3도민연대에 보냈다.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저 민속촌 자리허고 백사장이 옛날 우리 토산리 사람덜이 군인토벌대덜신디 떼 죽음당헌 디라/그때가 1948년 동짓달 열나흘날이라/군인덜이 마을사람덜을 모아 저 알토산으로 내려갔주/사람덜을 향사에 모이게 핸게마는 열여덟 살 이상 마흔 살까지 남자덜 백사장에 끄서간 기관총으로 몰살을 시킨 거라/죽어간 사람이 백오십칠명이라/그 사람덜이 죽어가난 그 비명소리, 아팡 죽어가멍 살려도렌 허는 소리, 저 백사장이 피로 벌경허게 물들고, 시체에서 털어진 살점덜 튿어먹젠 까마귀떼영 바당깅이덜이 시커멍하게 몰려오고 그것만이 아니주/성읍리 조아무개네 집 세 살난 애기를 모래 속에 산채로 파묻어 불지 않나, 아이고 그때 그것덜이 사람이라, 짐승이라도 경은 못허주/그 군인덜이 사람 죽인것도 모자랑, 우리 토산리 처녀덜 잡아강 벨짓을 다해서/지네 욕심 다 채워지믄 그 처녀덜 또 다 죽여불고/덕선이 할망도 그때 군이덜신디 끌려갔당 혼자만 살앙 와신디, 그말만 하믄 막 입에 거품물멍 발작을 허여나서/얼마나 끔찍허게 당해나시믄 경허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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