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언어에 스며든 삶의 질감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언어에 스며든 삶의 질감
  • 입력 : 2022. 06.08(수) 00:00
  • 김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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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막연히 제주에 살고 싶어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꼬박 두 달, 섬 곳곳을 떠돌았었다. 이른 겨울,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은 마치 서울에서 강원도를 거쳐 전라도로 향하는 여정처럼 제주의 기후는 변화무쌍했다. 걷다보면 어느새 바람의 촉감이 바뀌고 하늘의 구름도 다른 그림을 그렸으며 바다의 빛깔도 변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산, 바다, 오름, 계곡, 그 모든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던 제주는 막연한 기대에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토록 강렬했던 제주의 매력에 신비로운 감수성의 옷을 입힌 건 단연, 제주어였다.

이국의 언어인 듯 그 의미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제주어는 한 해, 또 한 해 시간이 쌓여갈수록 의미가 아닌 독특한 제주만의 감수성으로 다가왔다. 13년이 지난 현재에도 제주어로 쓰인 문학작품이나 제주 할망의 대화내용을 온전히 독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신기한 건 느낌으로, 분위기로, 감정으로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아이러니, 그것이 바로 제주어가 가진 힘이라 생각된다.

알아지크냐/ 느네 믿엉 꽝 보사진건/ 백 번이라도 무신거랜 안 고르켜/ 돌암시민 돌아온다/ 살암시민 살아진다/ 해 질댄 하늘 욕허지 말곡/ 땅 질댄 밭 욕허지 말라 -강덕환의 '조팥밟기'부분

위의 시는 제주어로 쓴 시다. 일부분을 가져왔으나 제주인이 아니라면 시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리 내어 읽어보면 시는 제주어 특유의 결을 따라 독특한 질감이 입혀진다. 척박한 환경에서 굴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강인하면서도 낙천적인 삶의 의지가 제주어의 운율을 따라 고스란히 전달된다. 파도에 깎이고 바다에 고립되도 바람 길을 내어주는 투박한 돌담처럼 제주어는 제주인의 삶과 문화가 그대로 스며들어있다. 때문에 제주어는 번역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구연되는 순간, 그 분위기만으로도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제주어는 2010년 유네스코에서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었다. 제주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상에서의 사용이 줄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제주어가 반갑고도 뭉클하다. 애플TV+ 8부작 드라마 '파친코'에 이어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어를 세계로 송출하고 있다. 투닥거리지만 따뜻하고 억척스럽지만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삶의 다양한 풍경은 투박하지만 사람 냄새 물신 풍기는 제주어와 어우러져 더 큰 공감대를 자아낸다. 굳이 자막을 넣으면서까지 작가가 제주어를 고집한데에는 아마도 삶의 리듬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제주어의 '맛' 때문이지 않을까. 제주어에는 아프고 모진 시간의 기억, 그럼에도 켜켜이 쌓인 시련들 툭툭 털어내며 살아 온 제주인의 생명력이 담겨있다. 그러한 제주어가 세계 곳곳에 더욱 깊이 스며들기를 기원한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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