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철창 찔린 엄마 시신 수습한 8살 소녀

1949년 철창 찔린 엄마 시신 수습한 8살 소녀
13일 4·3 직권재심 30명 무죄… 340명째
법정서는 당시 참상 고발하는 증언 잇따라
재판부 "이제는 숨지말고 떳떳하게 사시라"
  • 입력 : 2022. 09.13(화) 13:48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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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되는 4·3 재심 현장.

[한라일보] 그토록 찾던 어머니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군·경에 끌려간 오빠들을 살리겠다며 뛰쳐나갔지만, 심하게 훼손된 채 8살 난 딸에게 발견된 것이다.

4·3의 참혹한 실상을 고발하는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3일 군법회의 수형인 30명에 대한 13차 직권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3월 29일 40명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총 340명이 억울함을 푼 것이다.

앞선 재판과 마찬가지로 30명 모두 행방불명 혹은 사망해 유족이 대신 재판에 참석했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부말자(82·여)씨는 4·3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힘겹게 꺼냈다. 제주시 용강동에 살던 그녀는 8살이던 1949년 군법회의로 오빠인 고(故) 부성규씨를 잃은 것도 모자라 아들을 살리려는 어머니까지 살해되는 비극을 겪었다.

부씨는 "어머니는 큰오빠가 군경에 체포돼 바다쪽으로 끌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며 "하지만 어머니 마저 소식이 끊기면서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를 찾으러 나섰다. 발견 당시 어머니는 손발이 묶여 있었고, 철창으로 안면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부씨는 "4·3으로 어머니와 오빠 3명을 잃었다. 이후 나는 큰 오빠의 아내의 손에 의해 키워졌다"며 "어머니 생각을 하면 한 없이 서럽고 억울했지만, 어디가서 말 한 마디 못했다. 오늘 법정에서 가슴에 담아둔 얘기를 하니 조금 기쁘다"며 재판부에 무죄 선고를 요청했다.

군법회의로 희생된 고 전임부·전영부씨의 손자 전봉철는 "빨갱이 낙인으로 아버지는 물론 나까지 취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합격해도 신원조회 때 탈락했기 때문"이라며 "할아버지들의 제사도 아무도 몰래 식구끼리만 지냈다. 동네사람들의 눈총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죄를 선고한 장 부장판사는 "지난 추석 때 무죄를 받은 분들이 판결문을 젯상에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오늘 재판에 참석한 유족분들도 이제는 숨지말고 떳떳하게 명절이나 제사를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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