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34)조천읍 신흥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34)조천읍 신흥리
해안선 전체가 싱그러운 힐링공간이 되는 곳
  • 입력 : 2023. 02.03(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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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해변조간대가 원형 그대로 보전된 아름다운 마을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쉬엄 쉬엄 걸어서 가다보면 아직도 옛 제주의 바닷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곳임을 느낄 수 있다. 바닷가 관곶에서 전남 땅끝마을까지 가장 가깝다는 마을. 설문대할망이 육지까지 다리를 놓으려다가 정성이 모자라 그만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엉장매는 그러한 최소 거리에 대한 인식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놀라운 해안선을 보유한 독특한 마을.

옛 이름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 포구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1915년부터 신흥리라고 부르기 전까지 왜포(倭浦) 내포(內浦) 고포(古浦)라고 불러왔었다. 옛 지명이 뜻하는바 그대로 항아리 단면처럼 바다가 육지로 모래사장과 돌들로 이뤄져서 둥글게 들어와 있다. 바닷게가 집게발을 벌려서 뭔가를 집으려는 동작과 닮았다. 동쪽과 서쪽에서 바다로 뻗어나간 지형은 자연스럽게 방파제의 기능을 해주고 있으니 천혜의 포구였음이 분명하다. 마을의 가장 큰 외형적 특징을 보여주는 '큰개' '복작개'를 중심으로 번창해온 마을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며 조천과 경계를 이루는 엄장매 부근에서 엄씨, 장씨 등이 거주를 시작하여 살다가 지금의 큰물이라고 하는 용천수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이씨, 김씨, 임씨, 손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규모 있는 마을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천과 함덕이라는 큰 마을 사이에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그 위상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이유를 조상 대대로 '사람농사'라고 하는 인재 키우기에 열정을 쏟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마을 분위기를 상징화화여 하나의 당연한 문화로 정착시키고자 했던 지혜가 마을 위에 있는 지명 북구룡에 대한 스토리가 아닐까. 그 정기를 받아서 인물이 많이 배출된다는 이야기를 믿고 거기에 인간의 노력을 더하는 삶.

필자가 아는 한, 섬 제주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전된 연대를 보유한 마을이다. 왜포연대다. 둥글게 돌을 쌓아서 해안가 조금 높은 언덕 위에 설치된 모습. 그 아름다운 비례가 마치 조형물을 보는 듯 하다. 알려지지 않아서 이렇게 보존이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불을 피워서 제주가 당면한 여러 가지 위기 상황을 알리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평화의 섬 제주에 어떤 적신호가 켜지면 그에 대응하는 상징적 의미로 연대에 불을 올리거나, 한 해의 소망을 비는 정월대보름 같은 날에 염원의 의미로 작은 불을 피워 올려도 좋을 그런 소박한 연대다. 문화재적 관점에서 오직 형태 유지에 연연하기에는 너무도 그 살아 생동하는 존재감이 서글퍼 하는 모양이다. 전망공간으로써의 역할도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멀리 한라산에서부터 사방을 훑어보는 시각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경관감상 시설을 마을 발전을 위하여 관광자원화 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을 필요성이 있음에도 진입로 문제 등으로 방치에 가까운 현실이 서글픈 것이다. 엉장매에 얽힌 스토리 텔링 자원과 관곶, 왜포연대를 하나의 묶음으로 이어주는 소중한 자원임에도 그냥 외부에 있는 스타일을 따라하는 모방과 답습의 행정논리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진취적인 지원정책이 절실한 현실이다.

손유철 이장에게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자긍심이 무엇인지 묻자 한 단어로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가능성!" 큰 마을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오늘의 발전을 이룩해온 선조들의 공동체적 마인드로 긍정적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찾아 집중적으로 밀고 나가는 정신이라고 했다. 주어진 현실이 어떤 경우에든 넉넉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뚫고 나갈 가능성을 먼저 찾고자 했던 좌절금지구역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긍정의 힘이 견고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기에 작지만 강한 마을로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번잡함이 느껴지지 않는 포근한 분위기의 마을에서 고즈넉하고 아담하며, 어떤 정겨운 공기를 숨 쉴 수 있을 것 같은 제주의 진면목을 여기에서 발견한다. 미래는 우리의 가능성 속에 있다고 강조하는 이장님의 눈빛에서 이 마을공동체의 결기와 의지를 느끼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경험이다. 작다는 것은 상대적일 뿐, 절대값은 아니라는 의식의 근원이 더욱 궁금해지는 마을이다. 그 해답이 희망이기에. <시각예술가>

오르막길 밭담풍경
<연필소묘 79㎝×35㎝>

가장 강렬한 햇살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섬 제주의 밭담을 그리는 것이다. 그 것도 연필 하나만 가지고 현무암이 가진 특질과 무게감을 어두운 곳 중심으로 그려나가는 일. 아름다운 조천읍 신흥리의 여러 공간이 있으나 평소에 유독 눈여겨 놔둔 곳을 그렸다. 화면 구도가 이렇게 짜여 지기 위해서는 나지막한 오르막길이라야 가능하다. 멀리 보이는 집들이며 나무들이 저 위에 오르면 평지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독특한 원근법을 제시하는 곳. 도로에 하수도 공사 흔적이 차분하게 정겹다. 제주의 숱한 밭담 중에 이 밭담이 가진 놀라운 가치가 있다. 필자가 돌조형물 제작 설치에 20년 정도 열정을 쏟으면서 경험한 현무암의 다양한 특징들이 대부분 망라되어 있는 곳이다. 이 밭담 하나에 화산섬 제주의 현무암들이 종류별로 모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공질에서부터 무공질에 이르기까지 용암이 흐른 위치 분류에서부터 깬석기로 쓸 수 있을 정도의 결이 있는 현무암과 송이석은 아니지만 묽은 성질의 현무암(속칭 뽀빠이석)까지 크게 나누면 그 정도이지만 좀더 섬세하게 들어가 관찰하면 그 성질이 중간 융합 정도의 현무암까지 실로 다양하다. 그냥 무심코 지나가는 길가 밭담이지만 그림으로 그리기에는 그 질감의 변화무쌍함을 도전의 과제로 삼을 만 하다. 채색을 하는 순간 연필이라고 하는 광물질과 종이가 만나서 표현해내는 현무암이라고하는 돌 느낌이 사라질 게 뻔하다. 채색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그린 그림이다.

돌, 모래, 파도의 으뜸화음
<수채화 79㎝×35㎝>

섬 제주의 해변 중에 이토록 독특하면서도 조화로운 선(線)을 보유한 곳은 없을 것이다. 모래사장이면 그냥 모래로, 돌들의 쌓임이면 돌들의 조간대로 분류되지만 여기 이곳은 둘 다 있다. 신이 빚은 배합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가로선들이 오묘한 저음을 연주한다. 태양광선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오후의 복작개를 그렸다. 시간은 썰물이라 이 곳의 특징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방식, 그 무한대의 가능성 중에 이토록 아름다운 평등평화의 균형을 보았는가? 그리는 시간 내내 마음속으로 되새김하고, 또 되새김 한 것은 '여기는 환쟁이의 붓으로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인이 와서 시로 읊어야 할 곳이다.' 감성의 부족함을 실토하는 장소. 엉뚱한 생각으로 이 공간의 특징을 유추하였다. 10만년 동안 1개월에 한 장씩 100m 상공에서 촬영한 사진을 동영상으로 연결하면 어떤 모습일까? 모래와 돌들이 파도에 의하여 생명을 가진 유기체처럼 이 움푹 들어온 둥근 공간 속에서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보인다면 필자는 지금 앞으로 있을 생명공간의 한 찰라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저 안을 보금자리로 살아가는 숱한 조간대 생명체들을 생각한다. 마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반짝이는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있기 때문이라는 아름다운 가설을 음미하듯이. 세 개의 방사탑을 쌓은 이 마을 조상님들의 지혜가 놀랍다. 큰 바닷게의 형상이니 집게발을 접지 못하도록 가장 견고한 도형 삼각을 박아버렸다는 염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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