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선택에는 차선(次善)이 없다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선택에는 차선(次善)이 없다
  • 입력 : 2023. 03.15(수)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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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춘추시대 노나라의 미생(尾生)이란 청년은 개울가 다리 밑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로 했다. 궂은 날씨로 비가 쏟아지고 물이 다리 난간까지 차오를 정도였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 기둥을 붙잡고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며 버티다가 결국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서 죽고 말았다. 평소 믿음을 중시하고 신뢰가 돈독하기는 했어도 사람들의 입에 이 일화가 오르내리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우둔함을 한탄하기도 했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고사성어의 배경이다. 이 고사(古事)를 '사기(史記) 소진열전'에서 소진이란 사람이 연나라 소왕(昭王)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사용했었다. 미생을 흔히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얕잡아서 말할 때 인용되곤 하는데, 미생의 처지로 본다면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자신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지켰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삶의 선택에서 언제나 융통성이며 일관성을 두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최근 우리 정치 세태를 보고 있으면 30년, 20년 전과 그리 달리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당을 함께 이끌어갈 동지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려는 의인처럼 보였지만 이제 1년 남짓 남은 총선 일정 위에 선 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궁색하기 짝이 없다. 여당이며 야당 모두 공천권을 위한 암투가 예와 다르지 않고 배지 하나를 위해 이들이 선택하려는 길은 신념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다.

해마다 이 시기에는 강원도와 경북 지역으로 산불이 발생해 그 피해가 심각한데 제주에서는 새별오름에서 '들불축제'란 이름으로 오름에 불놓기를 한다. 다행히 지난해는 전면 취소됐다. 그런데 올해 다시 행사를 계획했다가 행사를 며칠 앞두고 불놓기와 관련된 행사는 전면 취소한다고 밝혔다. 시장은 "정부 담화문과 산불경보 '경계' 조치에 따라 부득이 축제 하이라이트인 오름 불놓기, 불꽃놀이 등 불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취소하게 돼 아쉬움이 크다"고 했는데, 이게 아쉬운 일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단 하루도 선택의 상황을 피할 길은 없다. 일상의 문제에서 갈등하게 되는 것은 그렇다 해도 삶의 방향과 관련된 길을 놓고도 언제나 그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흔히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그 차선이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최선이라고 여기던 것이 어떤 문제가 있기에 버리고 다른 걸 선택한 상황이므로 결국 최선일 수밖에 없다. 연인의 관계에서조차 차선은 없고 늘 최선을 선택한다고 해야 옳다.

미생에게는 물에 휩쓸려 죽게 되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일이 그에게는 최선이었다. 이 일화에 대해 사람들은 우직하다느니, 융통성이 없다느니 또는 순박하다느니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신에게는 그 길이 최선의 길인 셈이다. 오늘 정치인들의 공천권을 위한 자리 옮기기나 제주도를 상징할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의 고집도 모두 그들에게는 최선의 길인 셈이다. 다만 그 선택에 품위며 인격이 가늠될 뿐이다.<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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