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 - 오승철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 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
"셔?"
삽화=써머
----------------------------------------------------------
제주어 "안에 계셔?"의 단축형인 '셔?'는 마치 수공예 장인의 기예처럼 안 들리는 말을 들리는 말 쪽으로 끌어당긴다. 본질적인 것은 어딘가 이질적인 것을, 이질적인 것 또한 어딘가 본질적인 것을 가지기 마련이다. 시인은 본질적이며 이질적인 제주어의 형태와 말맛에 어우러지는 어느 틈새에 감쪽같이, 제 말을 바둑돌처럼 놓는다.
동네 장다리꽃 담장에서 까치무릇 핀 오름 앞까지 한걸음이라는 듯, 스치는 짧은 인연으로 무덤 한 채 있고, 솥뚜껑 여닫는 사이 달달하고 빤한 사랑이 들끓다 지면 산 자의 말은 이내 담백하고 깊어진다. 그때 본말은 생략되고 존칭 보조어간 하나의 볼륨만 싹~ 올라가는 그 말 '셔?'. 모든 말이 잔잔해질 때까지 제 안에 들이며 당도한 그믐달이 우리에게 묻는 말 또한 '셔?' 아닐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