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속칭 엄쟁이라고 불러온 마을이다. 옛 문헌에 엄장포(嚴莊浦)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지역의 명칭을 따서 표기 했거나 그 반대로 포구의 이름에서 유래 됐을 수 있다. 구전에 의하면 삼별초가 항파두리에 웅거 할 당시에 토성 축조에 마을사람들이 끌려가 강제노역 당했다고 하고 있으니, 설촌은 이미 13세기 말 이전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외부적 비교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도 독특한 마을의 유래를 보유하고 있다. 설촌의 주체가 분명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설촌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송씨 할망이 맨 처음 이 땅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기 때문에 그 할망의 고마움을 신당에 모셔서 마을 당제를 지낸다는 것이다. '송씨부인 일뤠한 집'이 그 곳이다. 마을공동체의 개척작을 대대손손 신당에 모셔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려는 심성을 지녀온 마을. 유교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단순하게 무속 신앙으로 접근 할 수 없는 어떤 마을 일체감의 표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주여성의 주도적 삶을 이야기하는 신화적 존재를 만날 수 있다. 그 송씨부인에 대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손자들에게 들려주며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송씨부인 일뤠한집 앞에서 흐뭇한 마음이 감돌았다. 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미덕이려니.
웃동네, 알동네, 모감동, 대흥동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오이농사로 유명하다. 너른 경작지 그 비옥함을 기반으로 야채류 밭농사에서 전국적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대로 포구에 도댓불을 밝히며 어로활동을 통해 생업을 이어온 반농반어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자원 중에 하나는 해안 절경이다. 제주섬 생성기에 용암이 바닷가까지 흘러와 파도와 만나면서 이처럼 멋있는 예술품을 만들 수 있다는 솜씨를 보여주는 듯하다. 숱한 세월동안 침식을 거듭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은 화산활동의 원자재를 제공하고 파도가 정이 돼 다듬어낸 조각품이라고 해야 한다. 해안도로를 걸어가면서 느끼는 어떤 시간성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해안구조는 포구를 중심으로 서쪽은 암반지대이고 동쪽은 원담을 지닌 호형구도를 지녔다. 이 곳 1.5㎞ 바닷가는 조상 대대로 어부와 해녀들의 생존 공간이었다. 여기에 독특한 해양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서 경이로움을 더해준다. '돌빌레염전'이다. 두꺼운 용암이 바닷가와 만나면서 수면 보다 위에서 평평하게 식은 바닥공간이 생성됐다. 파도가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 위에 바닷물을 길어 올려서 소금을 생산하던 곳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해주는 소금 생산 방법의 노하우는 이렇다. 먼저 염도 20% 정도의 '간물'을 만들고 30일 정도의 증발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집약형 경험으로 바닷가 현무암 위에서 만든 소금. 일반 소금보다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는 이 귀한 소금을 전승 발전 시켜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국가행정의 무관심과 무지로 안타까운 현실을 지니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해야 할 독창적인 해양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이 원인이다.
조상 대대로 바닷가 검은 현무암 위에서 소금을 만들 수 있었던 전통적 기술력이 멸실 위기에 있음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의 공통적인 기대감은 해안도로에 대한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마을 해변이 주는 청량감과 경관 덕에 최근 몇 해 사이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업소가 많이 늘어난 것도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 소득과 어업 소득만 가지고는 마을 주민들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살아온 의욕적인 주민의식으로 현실 안주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로 읽힌다. 지금까지 마을공동체가 추진해온 사업과 앞으로 펼쳐나갈 모든 사업들이 성과를 내서 주민복지 향상에 기여할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해안도로를 찾는 관광객이 지금의 몇 배는 돼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하겠고. 다른 해안도로 자원과는 색다르고 차별화된 진정한 의미의 느림의 미학을 구현할 수 있는 친환경적 해안도로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시각예술가>
지붕과 돌담 밭 풍경<연필소묘 79㎝×35㎝>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구엄리를 표현 할 수 있는 풍경을 찾으려 했다. 너무도 다양한 풍광 속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차별 방법을 찾았다면 위치적인 요소다. 수산봉 북서쪽 지역을 아우르는 마을이라는 사실을 풍경이라는 구도 속에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멀리 수산봉과 앞에 오케스트라 하모니처럼 펼쳐진 밭담의 높낮이들과 구멍들의 짜임 사이에 집들이 있다. 오름이라고 하는 제주의 자원과 농경문화의 상징 사이에 삶을 영위해온 주거 공간이 마치 원근법 속 괄호 속에 있는 듯하다. 장시간 고민 끝에 색을 입히지 않은 연필 소묘를 택해 작품에 임했다. 농업 경쟁력이 막강한 구엄리의 농경문화를 상징하는 밭담 중에서 몇 백 년은 됐을 것 같은 소박한 돌들의 쌓여진 모습, 무너진 곳은 무너진 대로 그냥 돠둔 모습을 봄날의 눈부신 태양광선 속에서 온전하게 '돌과 빛'이라는 주제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길가에서 그린 그림이다. 획일적인 가로 선이 아니라 악보로 옮겨 적으면 놀라운 멜로디가 탄생 할 것 같은 밭담 위의 곡선들. 뻗어나간 흐름들이 농작물을 품었다. 크지 않은 밭. 너무 소박해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경우가 이런 것이다. 큰 돈벌이가 될 수 있는 농사 공간이나 작물이 아니다. 그래도 씨를 뿌리고 정성드려 가꾼다. 돈에 앞서 밭에 대한 의무로 읽혀지기에 예술은 이를 담아내 전달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채색을 하는 순간 오래된 돌담의 느낌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돌염전 풍경<수채화 79㎝×35㎝>
멀리 방파제의 가로선 흐름은 사람의 노력에 의한 흐름이다. 앞에서 펼쳐진 좌우의 흐름은 자연이 선물한 것이다. 둘의 만남을 주선하면서도 간극을 만드는 포구 속 바닷물. 오후 다섯 시 정도의 지는 해를 받고 있는 하늘과 바다, 그 사이에 끼워진 존재들이 평온한 가로의 흐름을 노래하고 있다. 화면 중심에 햇살의 음지에서 발생하는 검은 현무암의 자연미가 광선의 강도를 더욱 증폭시킨다. 어둠이 만드는 빛이라고 했던가? 그 앞에 바닥은 놀라울 정도로 독특한 돌염전 바닥공간이다. 마치 바닥에 거대한 하얀천을 펼쳐서 조금씩 구겨 놓은 모습이다. 해녀의 아들로 바닷가와 잇닿은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필자는 바닷가 현무암 위에 접시처럼 파인 곳에 바닷물이 고여서 마르면 하얀 빛을 내는 소금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며 자랐다. 검은 현무암에 미세하게 흰 알갱이가 덮히면 어떤 색으로 보이는 지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을 되살려 늦은 오후 햇살에 돌염전 소금이 완성된 모습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려 그렸다. 소멸언어처럼 멸실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이 독특한 제주의 해변문화를 지켜주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그림으로 격문을 날리고 싶은 것이다.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시각적 자산이기도 하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 지닌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죄악에 가깝다. 경제적 가치를 뛰어 넘어야 생기는 문화적 가치 속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는 시대에 구엄리의 돌염전은 반드시 전승시켜야 할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