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수면 아래
  • 입력 : 2023. 04.28(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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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물안에서'.

[한라일보]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꿈틀댈까. 우리는 그 마음의 형상을 알아내기 위해 수도 없이 시도한다. 어떤 마음들은 어느 정도 뭉쳐져 희미하게나마 형체를 갖추기도 하고 어떤 마음들은 입자도 분간할 수 없이 흩어지곤 한다. 때로는 그 마음들이 마치 낯선 해변가에 덩그러니 놓인 돌덩이와 그 돌덩이들마저 알아챌 수 없게 휘감은 해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안의 무언가를 어딘가로 데려다 놓는 불확실한 과정을 우리는 창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더듬고 캐내어 기어코 완성이라 부르는 행위는 그토록 희미하고 흐릿하다.

핸드폰 어플로도 손쉽고 선명하게 장면을 다듬는 시대, 명료하고 선명한 해상도로 더욱 생생하게 복원되는 기술의 시대에 홍상수 감독의 29번째 작품 '물안에서'는 아웃 포커스(심도가 얕아 촬영 대상 이외의 대상이 초점이 맞지 않고 흐려 보이는 상태)된 화면들로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채우는 영화다. 심지어 '물안에서'는 화면 전체를 블러 처리한 장면들이 연속되며 붓 자국으로 만든 회화의 질감까지 느끼게 되는 낯선 영상들로 가득한 작품이다. 제주에서 촬영된 영화는 특히 인물들이 머무르던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더욱 또렷하게 뿌옇게 변한다. 그래서 세 명의 주요 출연진들의 얼굴은 물론이고 이들이 머무는 공간인 제주의 푸른 바다를 선명하게 인식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된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제주에 영화를 찍으러 갔고 그들이 보내는 제주에서의 며칠이 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의도적인 흐릿하고 희미한 화면이 인물의 심경을 더 잘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한 명의 배우와 한 명의 촬영 감독이 전부인 성모(신석호)의 첫 번째 연출작은 불투명한 욕망에 가깝다. 아르바이트 비를 모두 투자해서 찍는 영화의 예산은 넉넉지 않고 배우로서는 일해봤지만 감독으로서의 경험은 전무하며 첫 단편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 또한 불분명하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제주에 내려온 상국(하성국)과 남희(김승윤)를 위해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지만 재정 상 여의치 않고 자신의 지시를 기다리는 둘은 제주에서의 시간이 비교적 평온해 보인다. 심지어 갑자기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돌연 성모의 복잡한 심경 위에 더해진다. 그런 그의 시야가 밝을 리 만무하다. 영화를 위해 제주의 곳곳을 돌던 성모는 우연히 해변가 절벽에서 만난 어떤 순간에서 영감을 얻는다. 어쩌면 극도로 평범하게 보이는 그 순간이 성모의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된다.

'물안에서'는 61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 단조로운 줄거리와는 다르게 속을 알 수 없는 바다의 수면처럼 느껴지는 복잡하고 미묘한 '심경의 영화'다. 큰 사건 없이 흘러가는 잔잔함 아래 감춰진 미세한 인물의 욕망들이 영화의 표면에 끊임없는 무늬를 새겨 넣는다. 세상에는 있지만 나에게는 없던 무언가를 구현하려는 창작의 욕망, 그 선명한 구현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그 불확실한 순간들이 어떻게 뭉쳐지고 마침내 결단의 순간이 되는지를 영화는 서두르지 않고 안내한다. 또한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 중 '인트로덕션'의 촬영이 영화와 관객의 거리를 단박에 무너뜨리는 경험을 선사하며 예측하지 못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면 이 작품은 카메라라는 영화의 도구 자체를 쉼 없이 의식하고 인지해야 하는 생경한 체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의 작은 웅성거림은 영화 상영 내내 이어졌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들이었다. '물안에서'는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기본적 안정감을 건드리는 영화다. 물론 선명한 화면 속에서도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대체 선명하게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물 안에서 보는 세상처럼 '물안에서'가 만든 세상은 뿌옇게 번져 있다. 이 영화는 해석하는 종류의 작품이 아니라 헤쳐나가야 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대하는 자신의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거나 태연하게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요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불분명한 것을 분명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선택임을 영화는 명확하게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그 결단의 순간마저도 실은 희미한 풍경일 수 있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영화가 '물안에서'다. 홍상수 감독의 이 실험적 영화는 '인트로덕션'에 이어 또 한 번 '당신은 영화를 통해 어떤 세상을 보려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영화는 불현듯 떠오른 착상에 오랫동안 녹여낸 자신의 세계를 덧입혀 유일한 이야기가 되곤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관객이 왜 그의 해변에서 늘 혼자로도 충분한지를 납득할 매번의 이유가 된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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