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정의 목요담론] 제주 섬에서 여성

[오수정의 목요담론] 제주 섬에서 여성
  • 입력 : 2023. 05.18(목)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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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에서 여성은 특별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키가 컸다던 설문대할망은 걸어 다니거나, 잠시 쉬었던 흔적만으로도 지금의 제주섬을 만든 장본인이고 당오백 절오백의 중심에는 금백주할망이 당신의 원조로 자라잡고 있다. 또한 농업경제의 바탕에는 농사의 신 자청비가 제주의 풍요를 견인했고 바다의 생산량으로 경제력을 끌어올린 이들도 여성인 해녀들이었다. 그리고 한두 줄의 기록과 정려문으로 남겨진 효열·효부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인 김만덕, 일제 강점기의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최정숙·강평국·고수선 등과 같은 애국지사들도 찾아볼 수 있다. 제주를 소개함에 있어서도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이전까지 제주에는 바람과 돌, 여자가 많다는 삼다의 섬으로 마케팅됐다. 실제로 조선시대 제주를 기록하고 있는 '지리지'나 '읍지'에서 보여주고 있는 제주의 성별 인구수에서도 대략 마을마다 차이는 있지만 10%에서 30% 정도 여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제주는 창조신화부터 사회, 경제사, 근현대 독립운동사까지 여성을 빼고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제주를 만들고 섬의 수호자가 돼 고유의 문화를 형상화시킨 주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제주에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꽃이 많은데도 600년이 넘는 조선 이후 역사 속에 훌륭한 일을 하고 멋지게 산 여성을 말해보라면 손에 꼽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제주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일 것이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유교사상의 뿌리가 정착되면서 남녀인식, 신분의 서열 등 사회변화가 매우 컸다. 특히 남녀차별에 의한 여성의 활동성을 축소해 기록하거나 배제됐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시대성을 반영한 대표 여성을 세우는 데는 한계일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 전투는 여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랐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하면서 권율 장군 이름만 남겨졌다는 사실만을 보더라도 기록의 대상에서 여성은 빠져 있다. 지금이야 헌법상 양성평등 이념과 조화되도록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기성세대에 깊게 남아있는 유교적 시각이 조선시대와 다르지 않다는 점도 느낄 것이다. 제주 역사에서도 조선시대 김만덕을 제외하고는 딱히 우리에게 전달되는 내용이 부족한 것 역시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20여 년 전부터 제주를 이해하기 위한 정체성, 생활문화, 경제를 이끌어 낸 여성에 대한 기록들이 이뤄졌다. 해녀의 유네스코 인류의 무형유산 등재를 비롯해 김만덕 뮤지컬, 일제 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념사업, 서훈작업들이 여러 연구자들과 정책기관을 중심으로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아직 지역사회에서는 제주의 여성 인물을 대라고 하면 머뭇거려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축적된 성과를 다양한 문화컨텐츠사업으로 도민들에게 다가가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오수정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경영지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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