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전 전쟁고아 품어준 제주에 감사"

"70여 년 전 전쟁고아 품어준 제주에 감사"
전농로 '제주고 옛터'에 한국보육원서 '사은비' 설치
서울서 공수한 고아 1000여 명 농업학교 교실 등 사용
"한국전쟁 때 제주에서 당신의 자식처럼 고아들 돌봐"
  • 입력 : 2023. 06.18(일) 18:25  수정 : 2023. 06. 19(월) 17:51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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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보육원에서 70여 년 전 한국전쟁 시기에 전쟁고아들을 품어준 제주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제주시 전농로 제주고 옛터에 '사은비'를 설치했다. 진선희기자

[한라일보] "1950년 6·25한국전쟁 중에 전쟁고아 1059명을 보듬어 주신 제주도민, 제주도지사, 제주도교육감, 제주고등학교장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자식처럼 고아들을 돌보아주셨고, 어머니 같은 은덕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제주시 삼도1동 '제주고 옛터'에 얼마 전 이 같은 문구를 담은 '사은비(謝恩碑)'가 들어섰다. 제주국제교육원, 제주외국어학습센터, 제주융합과학연구원 제주수학체험관 등 교육기관이 모여 있는 전농로 부지에 놓인 사은비는 전쟁기 부모 잃은 수많은 아이들을 품고 정을 베푼 제주 사람들에게 뒤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사회복지법인 창필재단 한국보육원' 이름으로 설치됐다.

당시 전쟁고아들은 딘 헤스(1917~2015) 공군대령이 지휘하는 UN군 소속 미5공군 제61수송대 수송기 16대로 1950년 12월 말 서울에서 공수됐다. 이에 김충희 지사와 최광식 교장은 겨울방학 중인 제주농업중학교(1951년 8월부터는 제주농업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교실과 임시 천막에 이들을 수용해 사무실, 의무실, 창고, 취사장과 부대시설을 마련해줬다. 학교 시설이 순식간에 '전쟁고아원'으로 바뀌면서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농업학교 학생들은 야외에서 수업을 이어가야 했다. 그 기간이 1955년 11월 서울로 이전할 때까지 만 5년이었다.

한국보육원을 찾은 미군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모습.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제주도, 2009)에 '한국보육원과 황온순'이란 제목으로 수록된 사진이다. 제주도 제공

1940~1976년 지금의 제주시 전농로 '광양벌 6만여 평'에 자리했던 옛 제주고 건물 일부. 이 기간 제주고는 제주공립농업중학교, 제주농업중학교, 제주농업고등학교 등으로 학제와 교명이 바뀌었다. 사진은 제주시 노형동 '제주고100주년기념관' 전시 자료.

이곳에서 한국보육원이 탄생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권유로 1951년 2월 이들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우리나라 최대의 보육원이 만들어졌고 황온순(1903~2004) 초대 원장이 운영 책임을 맡은 것이다. 한국보육원은 40명으로 브라스밴드를 구성해 전쟁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달래주는 공연 활동도 펼쳤다.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에서 몇 해 전 제주 관악의 역사로 집중 조명했던 '클라리넷 소녀'도 바로 한국보육원 브라스밴드 단원이었다. 현재 한국보육원은 경기도 양주에 있다.

지난 16일 사은비가 있는 곳을 찾은 김순택(제주고 51회) 전 세종의원 원장은 "고아들 중에 국민학교, 중학교 동창들이 있었다. 집과 가까웠던 보육원에 놀러 가면 동창들이 황온순 여사를 어머니라고 소개했었다"며 설립자와의 오랜 인연을 떠올렸다. 그는 "그때 농업학교 15개 교실 중에 13개를 보육원 아이들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황온순 여사의 유지에 따라 세워진 사은비의 의미가 제주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전농로에는 사은비와 함께 2023년 7월 1일 자로 새긴 제주도교육감·제주고·제주고총동창회 명의의 '제주고의 옛터', 제주고동창회·제주고 80회 동창회의 '제주고와 항일투쟁', 제주향목로타리클럽 등의 '제주고, 현대사의 현장' 표석이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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