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무너지지 않는 곶

[영화觀] 무너지지 않는 곶
  • 입력 : 2023. 06.23(금) 00:00  수정 : 2023. 06. 23(금) 10:42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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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림팰리스'.

[한라일보] 올해 개봉한 한국 독립 극영화 중 1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가성문 감독의 데뷔작 '드림 팰리스'는 한국의 주거 문제를 적나라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은 진상규명을 위한 지난한 싸움 끝에 결국 합의를 택한다. 그녀는 남편의 사망 합의금으로 아파트 '드림팰리스'에 입주하며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에 부풀지만 입주 첫날부터 집안의 모든 수도에서 녹물이 쏟아지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 '드림팰리스'는 공포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한국의 주거 문제를 격렬하고 치열하게 다룬다. 그리고 이 한복판에 혜정 역을 맡은 배우 김선영이 있다. 쏟아지는 녹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대신 수백 통의 생수통을 나르는 그녀는 생존을 위해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는 사람이다. 아파트 입주자들이 집값 하락을 염려해 녹물 사건을 수면 아래 덮으려 하자 그녀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 분양 사무소에서 미분양 아파트를 팔아주면 녹물 수리를 할 돈을 벌 수 있는 커미션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혜정은 아파트 전단지에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넣어 돌리고 직접 현수막을 건다. 어제의 사람들과도 오늘의 사람들과도 잘 지낼 수 없는 혜정의 상황은 마치 자고 일어나면 몸의 곳곳에 새롭게 발생한 염증 투성이처럼도 느껴진다. 함께 농성에 참여했던 친한 동생 수인을 비롯 아들 동욱, 아파트 입주민 대표, 분양 사무소의 실장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과 대립 관계에 놓이게 되는 혜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완벽할 것이라고 믿었던 꿈의 보금자리가 무너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어서 혜정은 휘몰아치는 고난 앞에서도 눈을 부릅뜬다. 그저 이제는 안락한 집에 살고 싶은 혜정의 간절한 바람. 이것을 그저 욕망이라는 이름의 막차에 탔다고만 할 수 있을까.

'드림팰리스'는 사지절단이나 피 칠갑 없이도 관객의 내적 비명을 불러일으킨다. 무너져 가는 관계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다 충돌하는 욕망들이 아무 표정 없는 아파트 단지 위에 서슬 퍼런 그림자를 드리운다. 누군가의 진짜 삶을 목도하고 있다는 이 충격은 그래서 더욱 소름이 끼친다.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드림팰리스'의 현실감을 더해주는 건 무엇보다 주인공 혜정 역을 맡은 배우 김선영이다. 욕망의 낮과 밤을 살아내는 혜정의 발자국에 실리는 엄청난 무게를 배우 김선영은 거뜬히 등에 진다. 쉽게 사랑할 수도 단박에 미워할 수도 없는 이 인물을 외면하지 않게 만드는 배우의 힘. 배우 김선영은 언제나 무너질 것 같고 주저앉을 것 같은 인물들을 일으켜 세워왔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선우 엄마는 대중들에게 배우 김선영의 존재감을 여실히 알린 캐릭터다. 가난이 매일을 노크하는 삶 속에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남매를 키우며 살아가던 그녀의 애틋한 얼굴을 김선영은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자신이 그려내는 인물이 단순한 신파의 자장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도록 특유의 유머를 선사하는 리듬감을 통해서 말이다. 연극 무대를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 등 플랫폼을 오가는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배우 김선영은 '응답하라 1988'의 성공 이후 수많은 작품들에서 러브 콜을 받았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동백꽃 필 무렵'이 김선영 특유의 활력 넘치는 유머를 선보인 작품이라면 최근작인 '일타 스캔들'과 '퀸메이커'는 버석거릴 정도로 건조하고 예민한 김선영의 다른 면모를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단순히 연기의 폭이 넓다는 건 배우 김선영에 대한 불성실한 관찰이다. '드림팰리스'를 비롯한 독립영화 필모그래피에서는 그녀의 또 다른 진가와 깊이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이기도 한 이승원 감독과 함께한 세 편의 작품 '소통과 거짓말', '해피 뻐스데이' 그리고 '세자매'에서는 배우 김선영의 고유성이 더욱 도드라지게 발현된 바 있다. 벼랑 끝에 몰린 듯한 인물의 심경을 그려내는 스펙터클한 표정의 변화들과 능숙하게 자신의 신체를 활용하는 노련한 몸짓이 먼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극 속의 인물을 관객들이 결코 쉽게 동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낯선 거리감을 만들어내는 배우 김선영의 태도는 마치 자신의 캐릭터를 배우가 완전하게 끌어안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수도 없이 몰아친 파도에 의해 육지와 바다 사이 뾰족하게 돌출된 지점인 곶, 풍진 세상 속에서도 가장 난처한 위치에 던져진 인물들 마저 결박하듯 품에 안고 일으켜 세워 걷게 만드는 배우 김선영을 보면 이상하게 몸에 기운이 돈다. 그러니까 타인에게 당신도 살아라고 일갈하기 전에 어떻게든 살아보자는 꿈틀거림의 선창, 생명력의 현현. 삶이 무너진 자리에 망연자실한 사람들에게 펄펄 끓는 전기 포트를 들고 다닐 것 같은 사람. 배우 김선영이 작품을 만나 헤쳐나갈 무수한 곤경들이 안심되는 이유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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