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그리워하다
  • 입력 : 2024. 06.14(금) 00:00  수정 : 2024. 06. 14(금) 14:42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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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랜드'.

[한라일보] 이토록 충만하고 더없이 허망한 감정과 상태를 꼽자면 그리움이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마음과 몸의 불일치, 명확한 대상과 불명확한 거리 사이에 놓인 자가 한없이 부르는 모든 돌림노래의 제목들일 '그리움'. 온전히 나의 것이지만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세월도 변형시킬 수 없는 견고한 감정의 박제가 이 그리움 안에 있다. 영어로 '그립다' 인 'miss'는 잡거나 닿지 못하고 놓치고 빗나간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리움에는 필연적으로 상실이 존재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공동 연출하고 [가족의 탄생]과 [만추]를 연출한 바 있는 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이들이 존재하는 곳을 그린 SF드라마다.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서비스가 가능해진 가까운 미래에는 죽음이라는 강을 건너려는 배를 타는 이들이 있다. 용감하고 절실한 이들이 그리움에 몸을 싣는다. 어떤 이는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서비스를 자청하고 또 다른 이는 사고로 코마 상태에 놓인 연인을 둘의 일상으로 다시 데려 오기 위해 서비스를 신청한다. 보고 싶다는 강렬한 감정과 함께 있다는 희미한 감각 사이에 놓인 세계인 '원더랜드'에서는 불가능이라고만 여겼던 많은 것이 다시 가능해진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던 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꿈에도 나오지 않던 이를 호출할 수도 있다. '원더랜드'의 시스템 안에서는 누군가를 잃을 수 밖에 없는, 불시에 일어나는 사고나 회복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쾌적하고 안전한 이별의 유예가 불러오는 파고가 만만치 않게 높다. 생생하게 재현된 이미지의 움직임 속에서, 매끄럽게 재생되는 건강함의 상징들 사이에서 표면을 뚫고 나오는 감정들이 생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생생한 감각이 완전하게 채워줄 수 없는 감정 또한 '비밀과 거짓말'로 약속한 그리움에서 기인한다.

'원더랜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동의'로 시작된 '서비스'에 익숙해질수록 과속방지턱에 걸린 이들처럼 덜컹대며 흔들린다. 내가 느끼는 당신에 대한 감정은 진짜지만 눈 앞의 당신이 진짜가 아님을 알고 있는 계약 관계가 '원더랜드'다. 이 계약을 끝낼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서비스를 신청한 자신 뿐이라는 명백한 책임의 가중. 그리고 도저히 명료함으로 이를 수 없는 복잡하고 다단한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그리고 나가 쉴 새 없이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출렁인다. 평온함에 이르기 위해, 그리움을 붙잡기 위해 했던 시도들이 표면상 성공으로 안착될 즈음 발생하는 이 균열은 금새 감정의 크레바스를 만들어낸다. 과연 쌓여가는 그리움은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리움을 대체한 자리에 놓인 해결책과의 만남은 영원히 충만함으로 단단할 수 있을까.

[원더랜드]는 해결책을 내놓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정성 들여 질문을 시도하고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이들을 천천히 기다리는 침착한 인터뷰어를 닮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가 끝난 후 러닝 타임 내내 유보한 대답들을 골똘히 써내려 가게 된다.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영원한 관계는 존재할까요? 당신의 기억은 완전한가요? 그리고 마침내 영화는 묻는다. 사랑하는 방법과 살아가는 방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을 그리움에 대한 각자의 고유한 대답들을. 그렇게 이 영화의 끝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지점에서 나는 충분히 궁금해하는 것, 지칠 정도로 그리워 하는 것이 주는 끄덕임의 감각을 마침내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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