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만 보는 '그림책'? 삶 다시 생각하게 했죠" [가치육아]

"아이들만 보는 '그림책'? 삶 다시 생각하게 했죠" [가치육아]
[가치육아- 공동육아] (6)그림책 읽는 엄마 눈꽃해숙 씨
세 아이에게 읽어 주던 그림책
더 많은 아이·부모와 함께 읽어
양육 부담·삶의 고민 나누기도
  • 입력 : 2023. 07.06(목) 13:58  수정 : 2023. 07. 09(일) 15:54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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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엄마 눈꽃해숙(필명) 씨가 자신이 읽고 있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다. 해숙 씨는 제주시가족센터의 '제주엄마선생님 강사양성교육'을 통해 더 많은 부모, 아이들과 그림책을 함께 읽고 있다. 김지은기자

[한라일보] "인생에서 그림책을 읽어야 하는 시기가 세 번이 있다고 해요. 첫 번째는 내가 어릴 때, 두 번째는 아이를 낳아 키울 때, 세 번째는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때라고요.(일본 기록문학 대가 '야나기다 구니오')"

세 아이의 엄마 눈꽃해숙(필명·52) 씨는 그렇게 그림책을 다시 잡았다. 치열하게 일하고 있을 때 불현듯 삶에 물음표가 찍혔다. '이게 진짜 잘 살고 있는 건가'. 해숙 씨는 "우리가 가진 편견 중에 하나가 '그림책은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는 것"이라면서 "제게 그림책은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해숙 씨에게도 그림책 읽기가 '의무'였던 적이 있다. 2012년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서울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던 그는 셋째를 낳고 3개월 만에 일터로 복귀할 만큼 사회적 경력이 우선인 삶을 살았다. 해숙 씨는 "부끄러운 고백"이라면서 "내가 낳았지만 내가 아이를 잘 모르고, 힘들고 지쳐 있을 땐 다가오는 게 싫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를 재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엄마들과 영어 그림책 수업을 하고 있는 해숙 씨. 사진=제주시가족센터

|그림책 읽는 엄마 선생님

그러다 전환점이 찾아왔다. 몸이 버티지 못하고 신호를 보냈다. 갑작스런 일주일간의 입원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해숙 씨가 말했다. 이후 한 달간 제주로 여행을 떠나 왔고, 완전히 제주에 정착하게 됐다.

그림책을 새롭게 보게 된 것도 이 시기 즈음이다. "(제주에 와서는) 자기 전에 거의 하루도 안 놓치고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했다"고 해숙 씨가 말했다. 더 이상 '의무'가 아닌, 아이와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그림책에 대해 조금 알고 나니 진도를 나가듯 읽어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두세 페이지를 읽더라도 그 시간이 아이와 저한테 너무 좋은 거예요. 아이가 원하던 것은 그림책이 아니라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따뜻한 목소리이고, 엄마가 지금 자기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던 거죠."

세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해숙 씨는 더 많은 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잡았다. 아이들이 다녔던 제주시 아라초등학교에서 5년간 그림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했고, 틈틈이 전문 교육을 받으며 그림책 '공부'도 시작했다. 도내 엄마 아빠, 아이들과 그림책으로 만나는 선생님이 된 것도 자연스런 과정이었다. 2021년 제주시가족센터의 '제주엄마선생님 강사양성교육'을 거쳐 지난해부터 그림책 강의를 하고 있다.

제주엄마선생님인 해숙 씨가 추천하는 가족이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 그림=신비비안나 기자

|아빠도 울린 '그림책'

그의 '첫 강의'는 아빠들과의 만남이었다. 해숙 씨가 고른 책은 '미어캣의 스카프'(글그림 임경섭)였다. 평화로운 마을에 자칭 똑똑하다는 미어캣이 여행을 갔다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다른 미어캣들도 처음엔 빨간 스카프를 얻기 위해, 그 다음엔 파란, 보라 스카프를 얻으려 애쓰다 결국엔 '스카프 늪'에 빠지는 내용이다.

"(미어캣들이) 그러다 깨닫는 거죠. 이건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요. 이 책을 읽고 한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어요.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힘든 것을 풀어내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해숙 씨는 엄마들과의 독서모임도 운영 중이다. 책 읽기 봉사, 강의에서 만났던 엄마들과 책으로 둘러앉는다. 함께 책을 읽는 것은 양육 부담과 삶의 고민을 덜고 소통하는 일이라고 해숙 씨는 말한다. 두 모임 이름인 '꽃사다리', '나무사다리'에 들어있는 '사다리'는 '연결'의 뜻을 담았다.

해숙 씨와 그림책을 함께 읽는 엄마들. 사진=제주시가족센터

|그림책으로 마음 여는 대화를

부모에게 그림책은 아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해숙 씨는 "엄마 아빠의 '마음밭'을 잘 갈게 해 준다"고 했다. "척박한 땅에 씨만 갖다 놓는다고 잘 크지 않잖아요. 씨앗 한 알을 뿌릴 때도 밭을 다 뒤집어서 땅속에 양분이 섞이게끔 갈아주지요. 땅이 준비가 됐을 때 씨를 뿌려야 바람, 햇살, 비를 받아서 쑥쑥 잘 크고요. 그렇게 키운 씨앗은 잠깐 자라다가 쓰러지지 않지요."

그가 권하는 아이와의 그림책 읽기는 간단하다. 엄마 아빠가 읽어줄 것, 그리고 그림을 볼 것이다. 해숙 씨는 "그림책은 80% 이상의 메시지가 그림에 들어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글자를 읽다 보면 그림은 못 보거나 대충 볼 수밖에 없어 깊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림책은 남이 읽어줬을 때 와닿는 깊이가 달라요. 자기가 읽을 때는 못 보던 그림이 남이 읽어줄 때는 보이거든요. 아이와 글자를 안 읽고 그림만 봐도 좋아요.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그림이 있으면 '이 그림을 봤구나. 이건 어떤 그림인 것 같아?'하면서 얘기를 하는 거죠. 그림책을 매개로 아이와 마음을 연 대화를 나누면 아이는 그 시간이 너무 좋고 기다려져요. 엄마가 내 얘기를 들어주니까 말이에요."

◇가치 육아

한라일보의 '가치 육아'는 같이 묻고 함께 고민하며 육아의 가치를 더하는 코너입니다. 부모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관련 정보를 담는 '공동육아'와 제주도육아종합지원센터 오명녀 센터장이 육아 멘토로 나서는 '이럴 땐'을 2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모두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육아 이야기나 전문가 조언이 필요한 고민이 있다면 한라일보 가치 육아 담당자 이메일(jieun@ihalla.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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