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만의 한라시론] 망언에 대처하는 또 다른 자세

[고성만의 한라시론] 망언에 대처하는 또 다른 자세
  • 입력 : 2023. 09.07(목)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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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연초부터 4·3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희생자·유족을 비방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에 맞서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발표된 성명은 상반기에만 30여 건을 웃돈다. 이를 반영하듯 대응과 역량은 21년부터 매해 개정해 온 4·3특별법을 다시 손질하는 쪽으로 모아졌다. 제재 근거가 없는 훈시적 성격의 법 조항으로는 망언과 왜곡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악의적인 선동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강한 처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한편 긴박한 전개 속에서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은 어떠한 정치·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싹트는지, 그것은 어떠한 불안과 강박, 결핍의 다른 표현일 수 있는지, 가령 명예 훼손이나 권익 침해를 수반하지 않는 왜곡은 가능한 것인지, 왜곡 여부와 정도는 어떻게 판단될 수 있는지와 같은 선행돼야 할 질문들은 논의의 장에 들어설 기회를 얻지 못했다. 왜곡을 일삼고 시인·반성하기 거부하는 자들, 왜곡을 선동하거나 고취하는 이른바 혐오 유발자들은 적발해 단죄해야 할 대상일까. 아니면 계몽하고 교화해 '국민화합'(4·3특별법 1조), '화해와 상생'(16조)을 모색하는 장으로 편입시켜야 할 대상일까. 13조(희생자 및 유족의 권익 보호)와 31조(벌칙)의 적용·대상을 어디까지 설정할지는 과거청산의 핵심 의제인 '정의로운 해결', '전국화·세계화·미래화'의 밑그림을 구상할 때 요청되는 구성원의 범주를 묻는 질문과도 직결된다.

그러나 처벌 이후의 사회를 구체적으로 그려본다거나 처벌·비처벌만으로 수렴되지 않는 복수의 선택지를 확보하려는 논의는 시도되지 못한 채, 역사 왜곡의 근절책을 모색하는 자리에 법이 선두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역할을 하는 모양새다. 애당초 '규명된 역사', '회복된 명예'를 탄탄히 지켜낼 법이라는 것은 존재 가능한 것인가. 과연 형벌이 비방과 조롱을 방지할 수 있을까.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법이 정교해지는 만큼 왜곡과 혐오 또한 논리와 방법론을 새롭게 가다듬어 법망을 비웃는 사례는 이미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개정안(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은 벌칙 조항을 보강한 4·3특별법이 역사 왜곡을 예방하고 근절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그것은 비방과 폄훼의 임계점을 넘겨버린 시점에서 타진해 볼 처방전이라는 점에서 선제적 조치로 보기 어렵다. 중지(衆志)는 역사 왜곡과 악의적 혐오가 발원되기 어려운 혹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쪽으로도 모아져야 하지 않을까. 법 개정은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서, 거기에 쏠린 이목은 분산될 필요가 있고, 그 자리에 역사 왜곡이 어떠한 배경과 감정구조에서 발생하고 전파되는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원인을 찾으며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아갈 구체적인 과제들을 목록화할 때다. <고성만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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