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가뜩이나 부족한 제주지역 난임 시술 의료기관이 잇따라 문을 닫거나 시술을 중단하면서 난임 부부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11일 의료계와 제주특별자치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제주대학교병원을 난임 시술 지정 의료기관에서 해제한다고 통보했다.
앞서 제주대병원은 지난 2019년 8월 난자 채취실, 배양실, 연구실 등을 갖춘 난임·가임력 보존센터를 개소했지만 초대 센터장을 맡았던 의사가 한달 만에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면서 4년 가까이 진료를 중단했다. 제주대병원은 운영을 재개하기 위해 대체 의료진을 구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스스로 난임 병원 지위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대병원 관계자는 "대체 의료진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문을 닫게 된 난임·가임력 보존센터는 고위험 산모 치료 기관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11일 현재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도내 난임 시술 의료기관은 총 5곳이다. 난임 부부들은 통상 인공수정을 시도하다 실패하면 마지막 선택지로 시험관 아기 시술(체외 수정)을 받는데, 도내 5곳 산부인과 의원 중 A·B의원 등 2곳만 시험관 시술을 한다. 이번에 난임 병원에서 해제된 제주대병원은 모자보건법에 따라 인공수정 시술만 가능한 의료기관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주시 노형동 C의원과 D의원도 인공수정과 함께 시험관 시술을 했지만, C의원은 올해 1월 폐업했고 D의원은 지난달부터 시험관 시술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도내 난임 부부가 정확히 몇 명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지난 한해 제주도가 저출산 극복 차원에서 지원한 난임 시술 비용이 1400여건인 점을 감안하면 도내 상당수가 난임으로 고충을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족한 난임 의료 기관 현실은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하 제주여가원)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제주여가원이 오는 11월 '도내 난임 부부 현황과 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 발간을 앞두고 지난 7~8월 도내 난임 부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최근 5년간 난임 시술을 받은 여성 528명 중 97%가 '제주에 난임 병원을 더 설치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중 70.8%가 난임 진료를 받던 중 의료기관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전원'을 경험했으며, 전원 경험자 가운데 60.4%는 타 지역 병원으로 가는 등 원정 진료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난임 치료 과정에서 부담한 교통비와 숙박비만 1000만원 이상이었다는 응답이 7.8%를 차지해 전국 평균 2.8%에 비해 2.6배 높았다.
제주여가원 정여진 선임연구위원은 "도외 진료 비율이 높아 난임 시술을 위한 시간·경제·신체·심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태"라며 "전원율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지역은 산부인과 의사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가임여성 10만명 당 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제주가 43.1명으로 세종(30.2명), 경기(41.6명), 인천(42.9명)에 이어 전국에서 네 번째로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