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48)조천읍 와산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48)조천읍 와산리
오묘한 지형으로 다양한 경관이 생성되는 마을
  • 입력 : 2023. 10.13(금)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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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터를 잘 잡은 마을이다. 놀라운 옛 선인들의 안목에 경탄하게 되는 신비감이라고나 할까. 대흘리에서 동쪽으로 가다가 내리막길을 따라가면서 바라보면 멀리 알바메기 오름이 보이고 가까이 펼쳐지는 안온함과 기품 넘치는 모습. 번영로에서 세미오름을 바라보며 경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탁 트인 느낌, 바다와 해안선이 동시에 들어오는 절묘한 풍광. 바다가 인접하지 않은 마을임에도 시각적으로 바다를 향유할 수 있는 지점이다. 마을 역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당오름과 거기에서 솟아난 세샘은 신비감에서 비롯한다. 와산 본동을 비롯하여 종남동, 웃동네, 제비동, 섯가름, 무근가름, 동가름으로 동네 이름이 정겹다. 서쪽에는 대흘리, 동쪽에는 선흘1리, 북쪽에 함덕리, 마을의 위쪽이라고 할 수 있는 남쪽에는 교래리가 위치 했다. 경사를 따라서 내려가는 지형을 가졌기 때문에 넓은 경지면적에도 불구하고 집중호우, 습도, 안개에 취약한 면이 있다고 하지만 감귤과 참깨 재배로 농업소득은 높은 수준이다.

고두진 이장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4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비문들을 판단 근거로 했을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마을에 전해지는 속설 하나가 어떻게 살아온 사람들인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오름에 하루에 세 번 오르락 내리락 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마소를 풀어놓고 하루 세 번 이상 관리를 잘하면 부유함은 당연하게 따라온다는 옛 축산문화가 담겨져 있는 귀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전에 의한 것이지만 원래 교래리 방면에서 살던 주민들이 차츰 아래로 이동해서 촌락을 번창시켰다고 한다.

무속의 영향력이 강했던 마을이기도 하다. 향토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와산리 본향당(불도당)이 있다. 내력담이 독특한 스토리텔링 자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공주 따님이 와산리에 불도삼승또가 되어서 임신과 양육을 관장하게 되었다. 옥황상제 셋째딸이 당오름 봉우리에 좌정하게 되자 자식 없는 여자가 "이 당이 영급이 있거든 포태 시켜주십써!" 하였다. 그 소원이 이뤄져서 당에 제를 지내려 하였으나 만삭이 된 관계로 산 위에까지 오르지 못하여 다시 소원하기를 "영급이 있거든 당오름 아래 편안한 곳으로 내려와 좌정하시면 제를 지내쿠다."하고 아뢰었더니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큰 바위가 산 위에서 아래로 굴러와 멈췄다. 이런 전설이 있어서 지금도 아이 못 낳는 여성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리면 효험을 본다는 소문이 내려온다.

고두진 이장에게 마을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물었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에서 찾는다면 화합입니다. 이주민과 조상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 사이에 서로 정을 나누는 모습들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가는 것이 흐믓합니다." 이주민의 비율이 60%를 넘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융합을 이뤄나가는 보람이요 와산리가 일궈가는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마을 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서로의 마음을 역지사지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풍토를 형성해나가는 것은 와산리 주민들이 이뤄나가는 소박한 성공신화이기도 한 것이다. 마을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어느 이주민의 이야기는 오늘의 와산리의 마음을 대변한다.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소중한 사실을 외면하고 개인주의적이요 이기적인 도시생활 습관을 유지한다면 농촌마을에 살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마을공동체가 조상 대대로 보유하고 전승해온 '서로의 정'을 자신들의 삶의 질 향상의 토대로 삼겠다는 이주민들의 의지를 발견하면서 포근한 감정이 솟아났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고 했던가. 사람의 향기 가득한 마을이다. 와산리 주민이 되는 순간부터 생겨나는 어떤 뿌듯함.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는 행복감이 그것이리라. 정이 넘치는 마을에서 무엇을 부러워하랴.



103세 양근여 할머니댁 주변
<수채화 79㎝×35㎝>

수묵담채 느낌에 명암법을 가미하여 그렸다. 서양인들이 동양의 담채풍경을 보면서 가끔 그런 질문은 한다, 미완성이냐고. 여백의 미를 모르는 문화적 풍토 때문에 나오는 질문이라고 했다. 하늘과 길을 하얀 여백으로 남기고도 얻고자 하는 담백함과 가을의 청명함을 느끼도록 하였으니 편안하다.

왼쪽 정면에 있는 파란 지붕과 녹슨 대문이 있는 집이 올해로 103세가 되는 양근여 할머니댁이다. 아직도 김을 매고 소소한 집안일들을 하시며 건강하게 사신다고 한다. 와산리라고 하는 자연환경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은 심정이다. 맑은 가을날에 쏟아지는 태양광선 속에 할머니의 집을 그려드리고 싶은 심정은 그림으로 그 삶을 찬미하고 싶어서다. 하늘과 길이 아직 채색되지 않은 상태로 하얗게 남아 있는 이유는 할머니의 너그러움과 곧은 성품이 고풍스럽게 이 가을 속에서도 싱그럽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 여기면서. 삼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저 나무들의 나이테는 할머니의 나이에 비하면 너무 어리다. 할머니를 통하여 장수촌 와산리의 맑음을 그리고 싶었다. 소박한 돌담들의 나열은 정감어린 이야기들을 쌓고 쌓으며 살아온 우리네 마을의 사연들이다.

오른쪽 근경에 가을 코스모스 분위기의 이름모를 꽂이 화사한 광선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를 색으로 형성하고서 공간감을 획득하고 나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유추되는 형식의 풍경화를 통하여 깔끔한 여운을 마련하였다.



설문대여신이 한라산으로 누워
<수채화 79cm×35cm>

설촌 당시에 마을 명칭은 와호산(臥虎山)이었다. 당오름이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호랑이가 들어간 이름으로 마을 명칭을 쓰니 사람들이 거칠고 사나워서 용력을 과시하는 자가 많이 나타나니 걱정이라, 마을사람들이 호랑이를 빼고 그냥 와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와산의 연원은 그러하지만 누운산은 호랑이도 아니요, 당오름도 아닌 한라산이라고 하는 생각을 이 지점에서 바라보며 확신하였다. 세미오름에 북쪽으로 능선자락이 흐르고 그 동쪽 낮은 지대로 이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저 초록 침상에 한라산이 누워있는 설문대의 형상으로 엄연하게 느껴진 것은 비단 이 그림을 그리는 눈의 관점 만은 아닐 것이다. 한라산이 평화롭게 누워 있는 형상을 만나는 마을이라 여기면서 그리려 하였다. 아침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근경에 나무들이 과장되게 눈부시다. 이 나무들에서부터 저기 능선까지가 와산리의 중심영역이다. 그 다음은 한라산. 가로로 흐르는 선이 석줄 뿐이다. 그 흐름 이외의 것을 배제하고서도 충분하게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무모할 정도로 넓게 배치된 하늘 덕분이다. 가로 비례가 큰 화면이라고 하더라도 한라산의 시작과 끝, 그러니까 설문대여신이 누워 있는 긴 모습을 화면에 담으려니 어쩔 수 없이 하늘이 크게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수채화에서 얻은 수 있는 기법상의 강점들을 총동원해야 얻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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