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52)한경면 저지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52)한경면 저지리
생태보존을 바탕으로 이룩한 문화예술 마을
  • 입력 : 2023. 11.24(금)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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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참으로 큰 마을이다. 면적보다 더 큰 꿈을 현실로 만들어온 마을이기에 그렇다. 멀리 내다보는 주민들의 안목과 실천 역량이 꿈의 크기를 보여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저지리의 꿈은 차곡차곡 현실이 되었으며 계속되어질 것이다. 타지에서 마을만들기사업과 관련하여 견학을 온 사람들은 마을회관 앞에 부착된 수많은 인증판들을 보고 기가 죽는다고 한다. 그동안 추진하여 이룩한 성과를 인정받은 것들이다. 마을공동체의 성장이 자기 가족과 자신의 발전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서는 저런 꾸준함이 발생되지 않기에 더욱 감동이다.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마을이다. 한경면의 마을 중에 가장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면 주변에 금악리, 조수리, 낙천리, 청수리, 월림리가 동서남북으로 펼쳐져 있다. 설촌의 역사는 400 여 년 전으로 파악되어지는 것이, 숱한 문헌과 고지도에 표기된 내용들을 종합하고 비문과 족보 등을 참고로 하면 마을의 역사가 확연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다섯 개의 자연마을이 뭉쳐서 저지리를 이루고 있다. 저지오름에 올라 바라보면 수동, 중동, 남동, 명이동, 성전동이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물이 귀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생존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하여 힘겹게 못을 파서 생활용수로 활용하던 조상들의 개척정신이 후예들에게도 그대로 전승된 것이다. 물 이름들이 정겹다. 새굿물통, 거슨물, 앞새물, 보난물, 되빌레물, 얼챙이물, 안소랭이, 밧소랭이, 중굿물, 덩애물, 어두운물, 용선달이못, 쟁개빌레물 등 많은 물들이 생명수가 되어 저지리 조상들의 생존공간을 지켜주었다. 물을 얻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땀방울이 모이고 모여 그대로 못에 가득찬 물이 되어 돌아왔을 것이다. 옛 식수터를 돌아보며 숙여해 지는 것은 가뭄이 닥쳤을 때 물을 얻기 위한 고된 노동에 대하여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들이 있어서다.

김재남 이장에게 저지리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물었다. 대답은 간명하지만 그 무게감은 본질을 꿰뚫고 나온 것이었다. "생태보존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숱한 명성으로 가득한 외적인 평가를 놔두고 곶자왈과 같은 생태자원을 이야기 하는 마음이 아름답다.

아무리 좋은 마을만들기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자연자원이라고 하는 근본을 훼손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면 난개발에 시달리는 마을이 되었을 것이라는 패러독스가 있는 질타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어떠한 문화예술적 향유도 자연의 가치를 이기지 못한다는 확고한 신념 속에서 예술마을 저지리도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한 세대 전까지만 하여도 평범한 중산간 마을이었던 저지리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연합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마을 4호'로 지정된 것은 변화를 향한 끊임없는 주민들의 실천의지의 결과다. 환경적 요인이 아무리 좋다손 치더라도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진취적인 사고와 결속력에 의한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누가 인정하겠는가. 농사만 가지고선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발전의지를 폭발시켜온 공동체적 동력장치의 실체가 불문율처럼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문화예술적 가치를 흡수하는 농촌이라는 발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단계별로 얼마나 많은 노고가 있었을까? 저지리 노인회관 앞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존경심이 생기는 것은 젊은 날 집념과 열정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여 함께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인생의 가치를 출세지향적인 면에 두지 아니하고 자신을 낳고 키워준 마을의 미래를 향하여 살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다음 세대에 더욱 업그레이드 된 자신감으로 작용하면서 마을회관 앞 대로변은 도농복합지대 같은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이런 농담이 새삼 부럽다. '미국에도 저지라는 곳이 있다, 그 저지마을이 성장해서 새로운 저지가 되고 주가 되었는데... 그게 뉴저지주다.' 주민 소득이 미국의 뉴저지를 앞지르는 저지리가 되고야 말겠다는 웃음 속에서 야무진 희망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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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네 집이라고 부르는
<연필소묘 79cm×35cm>


두 세대 정도의 시간이 화면 안에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은 풍경을 그리려는 욕심이기에 앞서 오늘의 저지리를 이룩한 저 슬레트집 세대의 노고를 그리고 싶어서다. 마을회관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내려가다 금악리로 꺾이는 삼거리 북쪽에 있다. 청년회장이 전해준 동네사람들이 부르는 집 이름이 너무 정겨워서 당장 그렸다. 돌담의 세월과 시멘트의 시대가 만나서 길가에 인접한 집을 형성하고 있다. 유리창을 통하여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 하늘과 땅을 여백으로 하고 그 사이에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집을 그렸다. 그리고 전봇대도 도달하지 못하는 하늘을 화면에서는 나무가 오른쪽 끝에서 연결한다. 참으로 황당한 구도다. 평범한 이 섬의 농촌집. 저지리가 보유한 놀라운 건축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을 그린 마음은 저 건물을 짖고 아이를 낳아 키우던 세대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인도와 차도라고 하는 사이를 경계석이라고 하는 높낮이가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자동차문화의 보편화가 이 농촌마을에도 일상이 되었음을 회화적으로나마 시사하고 있다. 녹슨 철문이 주는 정겨움과 컨테이너 건물을 옆에 붙여서 실용적인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는 모습에서 시대변화를 열거해가는 즐거움이 화면에 가득하다. 차도와 인도라고 하는 메커니즘 안쪽에 꿋꿋하게 전통을 고수하는 돌담이 가지는 비중은 실로 놀랍다. 그냥 보존하고 살자는 어떤 문화가 현실 속에 숨 쉬니 그리려 하였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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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오름이 품은 것들
<수채화 79cm×35cm>


겨울이라지만 여기는 초록이 짙다. 농로를 따라서 저지오름을 감상하다가 월동채소밭과 어우러진 나무들이며 커다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오름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어서 스케치에 들어갔다.

겨울날 오후 햇살이 나무들의 존재감과 함께 오름과의 거리감까지 형성시켜주니 고맙기도 하고. 나무 사이사이에 비닐하우스며 농사에 필요한 도구들을 놔두는 창고로 보이는 작은 집이 오묘하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태양빛은 그 밝기와 직접적으로 관계하여 거리 측정 용도로 화면 속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가 원근법을 능가하는 공간감 획득 방식이다. 저기 원경에 자리 잡은 저지 오름은 조상 대대로 얼마나 큰 보물창고였던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산상분화구라고 할 수 있는 저 곳은 어느 쪽 사면이나 경사와 거리가 비슷한 둥근 산체를 이뤘다, 햇살의 위치가 눈의 뒤에 있을 때에는 짙은 초록 나무색으로 보이지만 기울기가 심해진 태양과 물상들이 각도를 형성하면 이런 느낌의 오묘한 색으로 바뀐다.

눈과 오름 사이에 햇살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우면 색 자체가 다른 이미지로 변환된다. 나무들의 거리 또한 그 원리를 그대로 적용 받아 포근하면서도 눈부신 시각적 경험들이 화면에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다. 이 마을이 지닌 에너지를 함축적으로 화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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