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선의 하루를 시작하며]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오지선의 하루를 시작하며]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 입력 : 2023. 12.20(수) 00:00  수정 : 2023. 12. 20(수) 09:55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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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3년 전, 2020년 12월 21일, 나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췌장 내 자리 잡은 4㎝ 종양. 일단 암 진단을 받았지만, 암인지 아닌지는 수술해야만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었다. 암 환자 전문기관인 국립암센터에서 8시간에 걸쳐 췌장과 위 일부, 담낭, 십이지장 일체를 제거하는 췌십이지장절제술을 시행했고, 결과는 암이 아닌 양성 종양으로 진단받았다. 수술 후 며칠 중환자실에서 보내고도, 담도가 막히는 합병증이 계속되어 1년 반 동안 몸 밖으로 관을 꽂아 지냈다.

첫 번째 환자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길, 남편의 배웅과 각 수술실에서 의료진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살면서 심장이 '쿵' 내려앉는 가장 큰 경험이었고, 이를 통해 삶에 대한 간절함과 시간의 아쉬움, 나를 돌보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작년부터 자해행동을 하는 아이들과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는데, 그때마다 나의 심장은 또 '쿵' 내려앉는다.

진짜 힘들어서 자해행동 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 내가 힘드니 너도 당해보라고 시도한 아이, 그냥 친구 따라서 호기심에 해봤다는 아이.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나버린 아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나서 더 충격적인 경험은 부모님들의 반응이었다. 모든 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그만씩 헌 것 가졍으네…" 학교에서의 이야기를 호들갑 정도로 받아들일 땐 정말 힘이 빠지곤 한다.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녀의 이야기이고, 내 이야기이다. 자신이 혹은 자녀가 힘들다는 표현을 알아챈 것은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주변에 대한 관심을 통해 알아채고,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 근육을 키워야 할 때다.

얼마 전, 미국에서 자살예방교육을 하는 지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자해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묻는다고 한다. "너 혹시 지금 죽고 싶다는 생각하고 있니?" 직접 묻고, 화제를 명확히 해서 대화하는 것.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나눔으로써 생각을 정리하고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는 문화가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박진영)' 이란 책에 "아이들에게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르치기보다 분명 실패할 날이 올거라고, 삶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한다"는 부분이 와닿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큰 수술을 하고, 트라우마에 빠져있었던 내가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올 한 해도 잘 지내왔다고, 잘했다고! 조금 부족한 게 있어도 괜찮다고, 우리에겐 또 기회가 온다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주변을 돌아보는 연말이기를 바란다. <오지선 중문초등학교 교육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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