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예술적 가치가 있는 미술품은 어떤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서, 후원받고 보호받아야 할 귀중한 존재다. 2020년 이후, 미술시장의 호황이 시작됐다. 비트코인이나 주식으로 돈을 번 MZ세대들이 미술시장에 대거 유입되고, 이들이 미술품 구입을 취미이자 투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컬렉터 세대의 등장과 함께 2008년의 월가붕괴 이후 한참을 정체기였던 한국미술시장은 보기 드문 활기를 띠게 됐다. 2020년에 3291억 원이었던 한국미술시장의 규모는 2021년에 9223억 원으로 약 3배가량 올랐다. 시장의 활황에 고무된 미술시장의 관계자들은 이 기회에 "전문 인력 고용과 미술 관련 기업의 성장 기회까지 넓어지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제혜택 등 미술품 수집을 장려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적극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미술품 규제에 대한 필요성 및 관련 대안을 논의할 필요성이 공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거래 고객과 거래를 대행하는 갤러리는 특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미술품은 탈세의 수단, 돈세탁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객관적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미술품을 통해 수십억 원에 해당하는 고액을 은밀히 거래할 수 있게 된다. 미술품은 취득세나 등록세 등 다른 유형자산에 부과되는 세금이나 관세를 면제받는다. 2013년부터 양도소득세가 부과되고 있지만, 거래와 관련한 세금은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자금 세탁이나 탈세, 뇌물의 수단이 된다. 미술품을 통한 탈세에 경각을 알리고, 투명한 미술시장 운영으로 미술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탈세의 온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세금을 정확히 매기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는 후에 미술진흥법 도입 이후 활성화될 추급권과 관련해서도 중요하다. '재판매보상청구권'(resale right)이라고도 불리는 추급권은 "미술품의 소유권이 작가로부터 최초로 이전된 이후에… 미술품이 재판매되는 경우에는 해당 매도인에게 일정 요율에 따른 보상금을 청구할 권리"로 규정한다. 이력 관리가 제대로 되어야만 증가한 액수에 대한 측정, 그에 따른 작가에게 돌아갈 비용을 셈할 기준도 생길 것이다.
현재 관행만을 이야기하며 미술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기존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부 미술계 인사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건강한 거래를 하는 미술시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점이 도래했다. 미술시장은 그들만의 리그도, 음성적인 거래 시장도 아니다. 장기적인 미술시장 발전과 긍정적인 이미지 제고를 위해 미술품 이력제를 적극 시행하고 자리 잡아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새로 도입되는 미술진흥법에 유통과 감정에 대한 내용이 보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술계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미술진흥법과 발맞추며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나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