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선택과 약속의 계절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선택과 약속의 계절
  • 입력 : 2024. 01.24(수)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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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새해가 지나고 이제 곧 설날을 바라보며 우리는 삶의 길을 새롭게 선택하고 다짐하며, 때로 자신에게나 남들에게 굳게 약속하기도 한다. 이 선택과 약속에는 가치 인식과 의지가 그 배경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변하지 않아야 할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기는 몹시도 어렵다. 그러니까 가치는 본질적으로 고정불변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적어도 변화가 무한 가능한 우리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신념이며 의지 또한 인식의 변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22대 총선을 바라보며 우리 정치며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불편하다. 어느 당이든 국민을 대하는 모습이며 어느 정치인의 선택 등이 단순히 혼란스럽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에게는 몹시도 참혹할 정도로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소속된 정당을 배경으로 입신을 했으면서도 그 정당의 정체성을 부정한다든지, 이미 유권자들을 향해 포효했던 말들을 뒤집으며 새로운 정치를 운운하는 모습들은 가치 인식의 부재와 유권자와의 약속에 대한 신의를 의심케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한다면 누구도 타인의 삶에 대해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무효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삶은 남과 다른 유일한 길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군속(群俗)을 떠나 홀로 고고하게 살아갈 수는 없기에 사람과 더불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관계는 사회적 약속이거나 개인과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파기하는 경우 그 관계는 상실될 수밖에 없다. 부부의 관계든 연인의 관계든 마찬가지다. 하물며 정치인이 대 국민적 약속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유행하는 말 중 심플라이프(simple lif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너무도 복잡하고 다변화된 현대사회의 삶을 생각한다면 모순을 안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복잡하고 다변화되었다는 것은 모든 개인들의 특수성이 발현된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각자들의 관계가 곧 복잡하고 다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심플라이프란 오직 자신의 삶을 살아도 된다는 뜻이다. 엘튼 존(Elton John)의 노래 'simple life'의 가사 "I won't break and I won't bend"는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의미로 삼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선택은 누구도 강요당할 수 없고, 스스로 찾아가는 길이다.

살아가면서 누구와라도 어떤 약속을 했다면 지켜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을 끝내 지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 무엇보다 귀한 손녀, 손자를 매일 생각하고 있다.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그 아이들에게 올해도 쉽게 금연 약속은 하지 못하겠다. 가만히 생각하면 몹시도 부끄럽지만, 이 선택의 약속을 지켜내기는 두렵다. 나약하고 위선적이다. 남들에게는 간단한 선택일지는 모르겠다. 이 싸늘한 계절에 변함없이 수선화는 피기 시작했다. 그 그윽한 향기는 얼마나 숭고한 약속인가.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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