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중인 지금의 여기에서는 '슬로우 에이징'이 전 분야에 걸쳐 각광받고 있다. 좋은 식재료를 적게 먹고 꾸준하게 운동하며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늙는 일은 비단 중장년 세대의 화두만이 아니다. 2030 세대를 겨냥하는 뷰티 산업부터 '슬로우 에이징'은 대세가 되었다. 한때 '안티 에이징' 제품들이 빼곡하던 뷰티 스토어의 매대에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노화를 늦춰주는 슬로우 에이징' 제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종착지는 어쩔 수 없는 신체의 노화로 향하겠지만 가는 길목에서 선택하는 방법을 달리하는 것,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준비하자는 몸과 마음의 다짐. 지금의 젊은이들이 미래를 대하는 방식이다. 신체의 노화는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고 동안이라는 착시 현상으로 인해 실제 나이를 타인에게 감출 수 있다지만 그것은 어쩌면 겉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숫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만 나이 셈법이 도입되자마자 기뻐했던 순간들은 '한 살이라도 어리게 보인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칠십 년의 인생을 버텨낸 축제가 칠순 잔치였는데 이제 칠십 하나의 나이에 이른 이들은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시대다. 자가운전을 해서 여행을 가고 은퇴 후에도 새로운 일을 하며 규정된 나이 못지않은 활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백세시대라는 근미래를 예측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75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플랜 75'는 가까운 미래, 우리와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벌어지는 노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노년 세대를 겨냥한 청년세대의 불만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이 불안을 깊게 품은 불만은 범죄로 까지 이어지고 일본 정부는 '플랜 75'를 발표한다. 75세 이상의 노인들의 죽음을 지원하는 정책인 '플랜 75'는 차분하고 선명하며 냉정하다. 질병으로 인한 육체의 고통을 감당하기 힘든 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연명 치료 거부'와는 또 다르다. 그저 숫자로 인해 모든 것이 정해지는 죽음의 방식.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숫자로 인해 죽음의 서열화가 정해지는 방식이 '플랜 75'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치는 호텔의 청소일을 하며 지내는 독거노인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그녀가 일을 하고 또래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뒤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일상을 찬찬히 쫓아간다. 단정한 인상의 미치는 호텔 유니폼을 입고 숙련된 노동자로서 일하지만 뒤에서 바라본 그녀의 걸음은 조금 불편해 보인다. 일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얹혀 있는 움직임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미치는 라디오를 들으며 홀로 식사를 하고 손발톱을 정리한 뒤 집 안에 있는 화분에 뿌려준다. 마치 자신의 영양분의 조각으로 다른 생명을 지속하게 만드는 행위처럼 보였다. 그렇게 자신의 일과 일상을 영위해 오던 그녀가 둘 모두를 한 순간에 잃게 된다. 같이 일하던 또래의 동료가 일터에서 쓰러지면서 동년배의 모두가 해고당하게 되고 비슷한 시기에 살고 있던 낡은 아파트가 철거된다는 고지를 받게 된다. 더 일 할 수 있다고,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미치에게 사회는 쉽지 않다고 대답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의 나이는 그렇지 않다고 '플랜 75'를 은근하고 집요하게 권유한다.
삶은 늘 예정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지만 인간의 육체는 유한해서 수많은 갈래 길의 종착지가 한 곳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은 쓸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죽음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또한 모두 타자가 바라본 기록일 수밖에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사는 내내 웰빙을 말하던 우리는 자연히 웰다잉에 대해 논하게 된다. '플랜 75'는 죽음 앞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갑작스러운 불행처럼 찾아오는 죽음 대신 계획된 미래로서의 죽음을 선택하는 일은 과연 평온한 일일까. 그렇다면 죽음을 선택한 이들의 남은 삶은 평화로운 기다림일 뿐일까. 영화는 미치의 마지막 선택을 엔딩으로 택한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엔딩 크레딧이 지나가는 내내 미치의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했다. 누구도 타인의 삶에 대해 하나의 답을 내릴 수 없다. 어떤 사회도 죽음의 방식을 권유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은 각자에게 고유하고 유일한 선택이 되어야 한다. 삶의 계획도 죽음의 계획도 수천만의 가짓수가 존재해야 한다. '플랜 75'는 실패해야 한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