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마음을 걸어서

[영화觀] 마음을 걸어서
  • 입력 : 2024. 11.11(월) 02:00  수정 : 2024. 11. 11(월) 15:18
  • 임지현 기자 hijh52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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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설'.

[한라일보] 열다섯 살에 시력을 잃은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눈으로 책을 읽는 이들의 편견을 가뿐히 뛰어넘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에는 시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당연했던 내 생각의 습관 또한 어쩌면 그저 하나의 경우일 뿐이라는 걸 책장을 덮고나서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작가의 세상을 천천히 더듬은 뒤 덮었던 손의 감각으로 나는 이 책을 기억하기도 할 것이고 선명하게 떠올랐던 따뜻한 대화들이 귀에 들린 듯한 실재감으로, 책에 등장했던 음식들의 생생한 냄새들로도 이 책을 간직할 것이다. 조승리 작가는 책의 마지막에 미래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앞을 볼 수 없게 된 작가의 삶이 단지 개인의 비극일 리만은 없다고, 자신의 삶을 통해 감각을 뛰어 넘는 마음의 시력을 얻게 될 독자들에게 그가 전하는 바톤처럼 느껴지는 문장이다. 그의 마음이 손에 닿았을 때 마음이 뛰었다. 작가의 세계를 경험한 책은 끝났지만 내가 만나야 할 새로운 세계들로 향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조선호 감독의 영화 '청설'은 2010년 국내에 개봉했던 대만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비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의 로맨스를 그린 이 작품은 대만 청춘 로맨스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14년 만에 국내에서 리메이크 된 '청설'은 원작의 틀을 크게 바꾸지 않은 채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충실히 살리고 있다. 수영장으로 도시락 배달 알바를 갔다가 우연히 이상형 여름(노윤서)과 마주친 용준(홍경)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여름은 국가대표 선발을 앞두고 있는 수영 선수인 동생 가을(김민주)을 뒷바라지하는 입장이고 두 자매가 수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한 용준은 둘 모두를 청각장애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수어를 배워 두었던 용준은 여름에게 손으로 말을 걸고,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청설'의 대부분의 장면은 수어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모국어로 택한 언어가 수어인 것. 상대적으로 인간의 목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영화가 조용한 것은 아니다. 용준과 여름, 여름과 가을 그리고 세 사람 모두는 수어를 통해 충분한 대화를 나눈다.

'청설'은 청춘 로맨스 장르 답게 낯선 두 사람이 서로를 맞닥뜨린 뒤 가까워지고 호감을 갖다가도 오해가 생기고 멀어지기도 하는 이 장르의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다만 모든 관계에서 그러하듯 과정을 견인하는 핵심은 언어 보다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상대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담아두는 마음은 무슨 수를 써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을 때가 있어서 불시에 툭 튀어 나온 것들은 때론 진짜가 아닌 경우가 다반사다. 용준과 여름 그리고 가을 역시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이유로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이들의 마음은 언어의 노력으로 가 닿기에는 불가능한 지점에 쪼그라들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의 용기를 느끼는 건 어느 순간 커다랗게 팽창헤 문 앞까지 도착한 다른 마음 뿐이다. 그렇게 두 마음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향기가, 불꽃이 얼마나 다르고 같은지는 결국 거기까지를 달려본 마음들 만이 아는 일, 이것은 누구도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청설'의 용준은 수어를 배워 둔 덕에 여름에게 가까이 갈 기회를 얻은 이다. 이는 기회를 얻기 위해는 배움이 필요하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아마 용준이 수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는 당장이라도 여름의 언어를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썼을 이이기도 하다. 마음을 다 걸었다면 배움은 그에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열쇠를 쥔 모두가 문을 여는 건 아니듯, 언어가 통한다고 마음이 통하는 건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반전으로 느끼는 이들도 있을 테지만 나는 '청설'의 이야기에서 반전을 느끼지 못했다. 용준과 여름의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두 마음이 서로를 허락하는 것을 꼭 누군가를 통해 들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만약 앞으로 둘의 사랑의 다른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당연히 다름 아닌 둘의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벽인 줄 알았지만 사실 문이었던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레 짐작하고 포기한 것도 마음의 선택이었을 것이고 잘 자라게 만들었던 귀한 용기를 꺼내게 만든 곳도 마음의 밭일 것이다. 마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이렇게 신기하다.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렇다. 타인에게 말 걸기가 이토록 어려운 시대에 '청설'은 관계에 있어서 무엇을 먼저 걸 수 있는지를 되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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