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1] 3부 오름-(30)문도지오름, 골짜기도 봉우리도 없는 산마루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1] 3부 오름-(30)문도지오름, 골짜기도 봉우리도 없는 산마루
골짜기가 없는 오름, 그중에 산마루 형태
  • 입력 : 2024. 03.05(화) 00:00  수정 : 2024. 03. 05(화) 13:29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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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문도지오름의 지명 기원




[한라일보] 민오름 혹은 '민-'이 들어가는 지명이 꽤 보인다. 병악과 한 무리를 이루는 무악은 믜오름이라고도 한다. 사실 고어에서 '미다', '뮈다', '믜다'라는 말은 '흠이나 거친 데가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나무가 없는 산을 민둥산이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한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나무의 유무가 '민-'을 써도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라는 뜻이 된다. 고대인들은 대비지명을 흔히 사용했으므로 골짜기가 있는 오름과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이런 접두어를 사용했다. 골짜기가 있으면 '골오름', 없으면 '민오름' 하는 식이다.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문도지오름, 멀리 오른쪽에는 도너리오름(골체오름)이 보인다. 강경민

무악에서 서쪽으로 같은 안덕면 내에 문도지오름이 있다. 이 오름은 1954년 '증보 탐라지'에 문도지악(文道之岳)이라 하는 등 여러 기록에 문도악(文道岳), 문돈지(文豚池)로 나온다. 흔히 문도악, 문도지악, 문도지오름, 문돗지오름 등으로 부른다. 이 지명의 유래에 대한 설명은 마땅치 않은지 그저 '확실하게 알려진 바 없다'는 정도로 넘어간다. 이 오름은 도너리오름에서 1㎞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문도지오름은 '문도지+오름'의 구조다. 오름은 후대에 덧붙은 말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병악은 '골오름'의 한자 표기다. 그 옆에 믜악 또는 무악이라는 '미다', '뮈다', '믜다'를 접두어로 하는 오름이 있다. 병악의 대비지명이다. 이런 골짜기 없는 미끈한 오름을 표현하는 데는 '믠-'이나 '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도지오름에서처럼 '문-'으로도 나타난다.



‘문도지’란 골이 없어 ‘문-’, 도너리 돌림자 ‘도’, 산마루 ‘지’


그러므로 문도지는 '문+도지'일 텐데, 이 '도지'라는 말도 '도+지'의 구조이다. 이 오름은 도너리오름 가까이에 있어서 두 오름이 대비가 된다. '문-'이 붙은 이유는 도너리오름을 '골체오름'이라 하는 지명에 대비지명이 된다. 골체오름이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므로 문도지오름의 '문-'은 '골짜기가 없는'의 뜻으로 붙은 것이다.

왼쪽은 돗오름(돝오름), 오른쪽은 다랑쉬오름이다. 김찬수

'도지'는 '도+지'의 구조에서 '도-'는 '도너리오름'의 '도'에 대응하는 말이다. '돌'에서 'ㄹ'이 탈락한 구조로서 '높은'의 뜻이다. '지'라는 지명소가 문제가 된다. 이 말은 제주도의 지명에서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 말의 뜻을 모르고선 제주도의 지명을 풀기 어렵다 할 수 있을 정도다. '지'란 '旨(지)'의 음독자다. '旨(지)'라는 글자는 오늘날 '뜻(≒指)', '조서(詔書;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리기 위한 문서)', '성지(聖旨: 임금의 뜻)'라는 뜻으로 쓴다. 오름과는 어떤 관련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거에는 마라 또는 마르를 지시하는 한자로 썼다. 마라 또는 마르란 오늘날 마루의 고어형으로 마루, 등성이, 으뜸을 뜻한다. 1576년 간행된 '신증유합'이라는 한문입문서에는 '旨(지)'를 '마라지'라고 했다. 그러므로 '도지'란 '높은 산마루'를 의미한다. 따라서 문도지란 도너리오름 혹은 골체오름에 대응하여 '골짜기가 없는 산마루'다.





돗오름(돝오름)도 ‘도지오름’서 기원, ‘윗부분이 평평한 오름’


구좌읍 평대리와 송당리 경계에 돗오름(돝오름)이 있다. 흔히 '저악(猪岳)으로 알려져 있다. 돗오름은 돼지의 중세어 '돝'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본 기획에서는 돗오름에 쓰인 '돗'이 돼지를 지시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중세국어에서는 같은 발음 '돗', '돋'과 같은 단어는 돼지만이 아니라 배의 돛으로도 썼다.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해돋이라 한다. 오늘날에도 '더 높게 하다'를 '돋구다', 해나 달 같은 것이 '하늘에 솟아오르다'를 '돋다'라 한다. '돗'이라 발음할 수 있는 단어는 (돼지의) 돋, (배의) 돛, (해돋이의) 돋 등이다. 그렇다면 저악(猪岳)이라는 이름에 돼지 저(猪)가 들어있다고 해서 돼지와 연관된 이름이라고 하는 건 너무 성급한 추정이라는 취지다. 이건 그냥 훈음인 '돗'을 나타내고자 동원한 한자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돗오름이란 (높게) 도드라진 오름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었다. 본 기획 51회를 참조하실 수 있다.

문도지오름의 명칭에서도 문돈지(文豚池)라 하는 등 '도지'를 돼지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찍이 있었다. 그렇다면 역시 돼지오름이라고도 풀이하는 '돗오름'도 '도지오름'에서 기원했을 수 있다. 가까이에 다랑쉬오름이 있다.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도지오름의 '도'는 다랑쉬오름의 '다'에 대응하는 '높은'의 뜻을 담은 대응어다. '지'는 봉우리를 의미하는 다랑쉬의 '쉬'에 대응한 대비 지명소다. 물론 '마라지(旨)' 기원이다. 따라서 '돗오름'이란 '도지오름'으로 소급할 수 있다. '도지오름'은 '도지'에 오름이 덧붙은 것이다. 따라서 문도지오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돗오름'은 '돚오름'이고, 이것은 '도지'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오름에도 골짜기는 없지만 문도지오름 같은 '문'이 붙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 근처에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 없기 때문이다. '돗오름'은 '높은 산마루'의 뜻이다. '윗부분이 평평한 등성이 모양을 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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