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3] 3부 오름-(32)토산은 물이 흐르는 ‘돌오름’에서 기원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3] 3부 오름-(32)토산은 물이 흐르는 ‘돌오름’에서 기원
신화에서 기원한 토산, 멋스러움이 돋보이는 지명
  • 입력 : 2024. 03.19(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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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이 토끼를 닮아? 토산은 토끼와 무관


[한라일보] 토산이란 지명은 태종16년(1416) '동도 현감’은 정의현(旌義縣)을 본읍으로 하여 토산현(兎山縣), 호아현(狐兒縣), 홍로현(洪爐縣)을 소속시키며'라는 기사에서 처음 나타난다.

토산오름으로 거슨세미와 나단세미가 흐른다.

그 이듬해 기사에 '정의현 지역의 서쪽 마을 진사리(眞舍里)와 토산현(兔山縣) 지역 중에서 지리적으로 적당한 곳에 읍성(邑城)을 배치해야 할 것'이라는 다소 다른 표기인 토산현(兔山)이 나타난다. 1704년 남환박물에는 토산리(土山里), 1899년 정의군지도에는 토산(吐山)으로 기록했다.

토산의 표기는 연도순으로 兎山, 兔山, 土山, 吐山으로 나타난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표기는 兎山(토산)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지명들은 한자라는 점 외에 산(山)이라는 지명소가 공통이다. 과연 토산(兎山)이 무슨 말일까?

토산을 지칭하는 지명이 더 검색된다. 일제강점기의 지도에는 월지동(月旨洞)이란 지명도 나온다. 오늘까지도 달마르라 하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일대를 한자로 표기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런 명칭들을 종합해 보면 토산이 무슨 뜻인지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토산(兎山, 兔山)의 토(兎, 兔)는 무엇을 나타내려 한 것인가? 여기서 (토)란 兎(토)의 속자이므로 사실상 같은 글자다. 兎(토)라는 글자는 '토끼 토'라는 글자이므로 누구나 토끼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지형이 토끼와 닮아서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작 토산1리 주민들은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土山(토산)이 맞는 표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토산은 '돌오름'에서 기원, '돌'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토산 주민들은 토끼가 작고 연약한 이미지에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토산(兎山)의 지명 풀이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나단세미, 원래 이름은 돌 혹은 돌세미로 추정된다. 김찬수

그냥 토끼와 연관시키면 간명하게 풀릴 것 같지만, 그러면 土(토), 吐(토) 같은 토의 다른 표기들이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도 토산봉, 토산오름 등으로 부르는 토산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그저… 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개인적 상상뿐이다. 토산지명을 해명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런 복잡성 때문이다.

토(兎)라는 글자가 지시하는 내용이 또 달리 있는 게 아닐까? 원래 토(兎)라는 글자는 토끼를 지시하는 상형문자다. 그러나 한편으로 달에 옥토끼가 산다는 신화에서 '달'을 비유적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니 '달 토'라고도 한다. 토끼 외에 '달'을 지시하기도 한다는 점을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산(兎山)이란 달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달마르(月旨洞)라는 지명이 있다는 것은 이런 점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여기서 '달'은 '달'을 의미한다.

'달'은 月(달)로 표기했듯이 하늘의 달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것은 훈독자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제주도 지명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훈가자로 썼을 가능성이 있다. '달'은 고대어에서 '달'로 발음했다. 이 '달'의 뜻을 모르고선 설명이 불가능하다. 한 지명이 제주도엔 많다.

'달'이란 '돌'로도 발음하고 '달'로도 발음했다. 아마 15세기 '달산' 혹은 '달오름' 어쩌면 '가세(오름)'에 대응하여 '달세'로 발음하는 것을 받아적으면서 이 '달'을 어떻게 적을 것인가 고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영민하고도 지혜로운 선비가 이 '달 토(兎)'를 떠올리곤 '토산(兎山')으로 적은 것이다. 얼마나 멋스러운 이름인가?



‘돌’은 물과 관련한 지명, 골짜기가 있는 가세오름의 대비


알타이 제어에서 '달'과 비교되는 어휘가 꽤 많다. 우리 발음과 가장 가까운 말은 퉁구스어권에서 볼 수 있다. 깊은 곳, 소용돌이, (강의) 물살이 잔잔한 곳 등을 '들구'라고 한다. 몽골어권과 튀르크어권에서도 발음은 다소 멀어지지만 유사한 어휘가 있다. 일본어에서도 나타나는데 '도로(どろ)'가 진흙 또는 흙탕물을 의미한다.

국어에서는 15세기에 '돌'로 쓰였다. 1459년 월인석보에 '가라마다 칠보(七寶) 비치오니 황금(黃金)돌히니 돌 미틔 다 잡색금강', 1463년 법화경언해에 '큰 가마래 쇠 돌히 흐르며', 1481년 초간두시언해에 '날개 말 외노라 고기 잡난 돌해 가닥 얏도다', 1736년 여사서언해에 '양(梁)은 고기 잡난 돌이니' 등으로 '돌'을 물의 뜻으로 사용했다.

1576년 신증유합에는 오늘날 도랑 구(溝)를 '돌 구', 도랑 거(渠)를 '돌 거'라 했다. 1824년 유씨물명고 역시 도랑 거(渠)를 '돌 구'라 했다. 따라서 현대국어에서는 물 혹은 도랑이라는 뜻의 '돌'이 사라지고 대신 '도랑'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어휘의 변화를 볼 때 兎山(토산)은 '돌산'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확실하다. '산' 역시 한자어이므로 한자가 생활화하기 전에는 '달' 혹은 '오름'으로 발음했을 것이다. 돌오름이 그 기원이다. 골짜기가 있는 '가세'오름에 대비한 지명으로 돌, 즉 물이 흐르는 오름이라는 뜻으로 표기한 것이다. 다만 이곳에 형성한 마을이 훨씬 중요했으므로 원래의 '돌오름'이라는 지명은 '토산'이라는 한자표기에 밀려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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