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11] 3부 오름-(70)여문영아리, 여울이 있는 습지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11] 3부 오름-(70)여문영아리, 여울이 있는 습지 오름
'여문', 건조하다거나 단단하다는 말과 거리가 멀어
  • 입력 : 2025. 01.07(화) 04: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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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접한 두 오름 명칭이 똑같은 이유

[한라일보]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145번지다. 표고 514m, 자체 높이 134m이다. 지명에 대해 근거 없는 '전설의 고향'식 설명이 춤을 춘다. "남쪽에 있는 오름이 산정 화구호인 못이 패어 물이 괴어 있으므로 물영아리라 부르는 데 반하여 부르는 것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신령 같은 여인이 머리를 풀고 앉아 있는 형세라 하여 영아악(靈娥岳)으로 전한다."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문영아리와 물영아리오름 사이를 흐르는 송천을 막아 조성한 저수지, 보이는 오름은 물영아리오름이다. 김찬수

1703년에 간행한 '탐라순력도'라는 고전에는 여운영아리악(如云永我里岳)와 여운영아리(如雲永我里)로 표기했다. 18세기 중반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건영악(乾盈岳)이라 했고, 1872년 '제주삼읍전도'에는 조금 다르게 건영악(乾灵岳)이라 표기했다. 이후의 여러 기록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네이버 지도에는 영아리라 표기했다. 이웃하는 물영아리는 그대로 물영아리라 표기했다. 그러니 네이버 지도는 다소 혼란스럽게 되어있다. 카카오맵에는 여문영아리로 표기했다. 이웃하는 오름은 물영아리오름으로 표기했다.

지역에서는 영아리악(靈阿里岳), 영아악(靈娥岳), 영악(灵岳), 영운영악(灵雲灵岳), 영하악(靈阿岳), 예문영악(礼文灵岳), 용와악(龍臥岳) 등으로 쓰고 있다. 검색된 지명은 모두 14개에 달했다. 그중 영아리악(靈阿里岳), 영아악(靈娥岳), 영악(灵岳), 영하악(靈阿岳), 영하악(靈何岳) 등 5개는 인접한 물영아리오름과 중첩되는 이름들이다. 영(靈)을 공통으로 사용하면서 영아리를 음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용와악(龍臥岳)도 용아리를 차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왜 인접한 두 오름의 이름이 같을까? 이게 첫 번째 의문이다.



여문영아리의 '여문'이란 무슨 뜻인가

여운영아리(如雲永我里), 여운영아리악(如云永我里岳), 여운영알(如云灵謁), 영운영악(灵雲灵岳), 영알이(瀛謁伊), 예문영악(礼文灵岳) 등 6개는 오늘날 일반에서 사용하는 지명 여문영아리를 음차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아리', '아악', '하악', '하리', '영알', '알이', '영악' 등은 모두 '아리'를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이 말은 물장올에서 보이는 '올', 테역장오리의 '오리', 절우리의 '우리'처럼 오름의 고어형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여문영아리, 염은영아리의 '여문', '염은'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것이다. 이게 두 번째 의문이다.

여문영아리 탐방로 초입에 있는 못, 오름 주변에 크고 작은 못들이 있다. 곰솔 숲 너머로 여문영아리가 보인다. 김찬수

어떤 연구자는 '여믈다, 염다'는 중세국어 '여믈다' 또는 '염글다'에 대응한다고 봤다. 곡식알이나 땅 등이 마르고 단단하다는 뜻으로 쓰는 제주어라고 했다. 이런 해석은 고전에 나타나는 건영악(乾灵岳), 건영악(乾盈岳) 등에서 유도한 해석인지 모르겠으나, 마르고 단단한 땅을 '여믈다'거나 '염다'라고 하는 예는 찾기 힘들다. 국어에도 없다. 건영악(乾灵岳), 건영악(乾盈岳)으로 표기한 '제주삼읍도총지도'나 '제주삼읍전도'의 저자들도 이렇게 해석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명 표기에서 한자를 해석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여기서 '건(乾)'이 과연 훈독자인지 훈가자인지 어떻게 단정했다는 것인가? 마르고 단단한 땅을 지시하여 '여믈다'거나 '염다'라고 한다는 말은 제주어사전이나 제주도 지명 관련 문헌에는 나오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다.

마르고 단단한 땅을 제주어로 '염다'라 한다는 실재하지도 않는 설을 만들어 놓고 그에 근거하여 물이 있으면 물영아리, 물이 없으면 염은영아리라고 푼다. 영아리란 말은 본 기획 73회 토산 편과 80회 물영아리오름 편에서 밝힌 바 있다.



'여문'은 습지, 여울과 같은 기원, 국어 '우리다'로 의미 분화

영아리오름이란 '돌오름'에서 기원한다. 돌오름은 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다만 본 기획 80회 물영아리오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분화구에 물이 있어서 '영아리'라고 했다는 부분은 잘못됐기에 바로 잡는다. 물영아리오름의 지명 기원은 바로 송천에 있다. 지금은 훨씬 크게 확장하여 저수지를 조성했지만, 원래 샘물이 흘렀던 작은 골짜기였다. 그런 연유로 '영아리'란 지명이 붙었다. 그런데 이 샘물은 물영아리와 여문영아리 사이를 가로지른다. 어느 한 오름에 특별히 치우친 지세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둘 다 영아리라 했을 것이다. 고전의 기록이나 현실적으로도 한 이름 두 오름 즉, 동명이오름이다.

이런 혼란을 피하자니 또 다른 지명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붙은 것이 여문영아리다. '여문'이란 말은 건조하다거나 단단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이 말은 원래 '흠뻑 적시다', '젖다' 등을 의미하는 트랜스 유라시아어의 원시어 '울룸(ulum)'에서 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말은 점차 중간 모음 'u'가 탈락하면서 몽골어권에서 '습지'를 지시하는 말로 의미가 분화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현대어에서는 몽골어권 할하어에서 '움' 또는 '염(ulm)', 부리야트어에서는 같은 발음으로 '여울', '걸어서 건너다'의 뜻으로 쓴다. '여울'과는 어원을 일부 공유한다. 칼미크어와 오르도스어에서도 거의 같은 발음 같은 뜻을 나타낸다. 여문영아리는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주변이 온통 습지다. 오름 주변 곳곳에 못이 발달해 있고, 드넓은 초원에도 웅덩이가 산재하며, 습지식물도 흔히 자라고 있다.

국어에서는 뜻이 더욱 벌어져 '우리다'로 전의됐다. 이 말은 1542년 '분문온역이해방'이라는 의서에 처음 나온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여문영아리라는 지명을 남긴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여문영아리는 어원상 여울이 있는 습지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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