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60)안덕면 감산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60)안덕면 감산리
물과 산이 계곡으로 조화를 이룬 친환경마을
  • 입력 : 2024. 03.08(금)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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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감산리와 창천리 경계에 있는 '곰뫼'는 신산오름을 이르는 옛 지명이다. 여기에서 마을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곰'은 '검'과 같이 신령스러움을 뜻하는 고대어라고 하였으니 '신령스러운 산'이 된다. 이 산 기슭에 신당을 차려 놓고 소원을 빌었다고 하니 신성한 산 아래 펼쳐진 자연의 신비 가득한 마을이 분명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대략 7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안덕계곡의 바위 그늘집이나 고인돌 등으로 미뤄보면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 선사시대부터 생존의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헌이나 비석 등을 통하여 전해지는 근거에 의하면 류씨와 고씨가 통물 부근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마을이 번창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출중한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향약 규율이 엄격했던 양촌으로 주변 마을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다.

감산계곡마을로 지칭될 정도로 안덕계곡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이 크다. 안덕계곡은 군산 북사면에서 월라봉 서사면을 절단하며 이뤄진 깊은 계곡으로 섬 제주에서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이렇게 큰 협곡은 이 곳 이외에는 없다. 화산섬의 특성상 바다로 향할수록 지형은 완만하지만 경이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지질학적 자원이기도 하다. 수량도 풍부하여 상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조면암이 많은 기암절벽 계곡이다.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진 소중한 천연자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300여 종의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는 자연식물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계곡 남쪽 지역으로 바닷가까지 높은 지경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전망대가 필요 없는 경관적 보물창고다. 박수기정 해변에 이르는 전망자원 중에는 마을 소유 땅들이 있으니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행정지원이 절실해 보인다.

김형순 이장에게 감산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샘물이지요. 솟아나는 물!" 계곡보다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최고 물맛을 보유한 생활용수가 솟아나 조상 대대로 그 물을 중심으로 결속력을 이어왔으니 그렇다는 설명이다. 귀한 샘물이 주는 상징성을 포괄적 자긍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자부심들이 있음에도 그러한 샘물자원을 이야기 하는 것은 타지에 나가 살고 있는 출향 인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예로부터 향학열이 높았던 선비 마을이기에 자식 농사에 모든 것을 바쳤던 전통의 결과, 출향 인사들 중에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감산리가 고향이라는 자긍심을 가진 분들에 대한 공통분모로의 샘물자원. 사려 깊은 기대감이 밀려온다.

오래된 안타까움이 있음에도 행정적 방법을 찾지 아니하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대로변에 인접한 안덕계곡 주차장 공간 중에 활용되고 있지 않은 부지가 행정관청 소유로 되어있다. 이를 마을공동체에서 장기 임대라도 내서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다면 농외소득 증대나 마을공익 사업에 필요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안덕계곡이라고 하는 관광자원을 보다 큰 가치로 견인할 수 있는 것은 단편적인 행정논리보다 지역주민들의 참여 속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발전시킬 수 있는 모델을 마을공동체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크다. 하천 주변에 활용 가능한 행정기관 소유 부지가 있다면 중장기적인 활용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이라도 실시하여 미래지향적인 안덕계곡 활성화 전략을 수립해야 옳다. 수려한 외형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안덕계곡과 함께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행정적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조상 대대로 양반고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마을이기에 어떤 가슴 아픈 일이 있더라도 크게 내색하지 아니하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니다. 젊은이들이 고향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들은 마을 공동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와 직면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 중심에 안덕계곡 활용방안이 있다. <시각예술가>



밭이 품은 모든 것들
<수채화 79cm×35cm>


지경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풍경을 그리려 마을 곳곳을 누비고 다니다가 발견한 너무도 아름답고 조화로운 지점에 이르렀다.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그것도 중턱 정도의 눈높이가 소실점이다. 그러므로 여기는 해발 고도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된다. 산이 시각적 척도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오후의 햇살을 담채화 느낌으로 연필선이 드러나게 그렸다. 전형적인 제주의 밭이다. 밀감나무가 근경 아래를 쟁반처럼 받아주고 있고 그 위에 놓여있는 풍경들이 정겨움을 더한다. 밭 가운데 무덤이 있고 그 옆에 농업용 창고로 보이는 집이 있다. 나무들이 서있는 위치와 구도가 참으로 경이로운 짜임새를 연출하고 있다. 왼쪽 햇살 아래 나무들은 역광에 가깝고 오른쪽으로 올수록 명암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파노라마다. 오른쪽 앞에 죽은 지 오래된 소나무가 껍질이 벗겨져 흰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처량함이 화면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어떤 서정성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림자를 드리우고 아직도 쓰러지지 아니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밭 가운데 무덤이 주는 이 섬의 독특한 풍광은 오랜 세월 이 밭들과 함께 살았던 어느 시기의 삶이 고전처럼 읽힌다. 멀리 산방산의 엷은 파란색이 거리감으로 작용하여 화면 전체의 공간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눈부신 어느 봄날, 뽀얀 대기에 쌓인 다사로움이 느껴지도록 그리려 하였다. 짙은 곳과 희미한 곳의 대비가 주는 탄력적 리듬감. 평범한 것들이 모여 특별해지는 경우다.



안덕계곡의 봄
<수채화 79cm×35cm>


세월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싶었다. 저 바위들이 절벽에서 일시에 떨어져 나와 뒹구는 것은 아니리라. 어느 것은 천 년 전에, 또 어떤 것은 오백 년 전에, 오른쪽 끝에 있는 덩치가 큰 놈은 60년 전에 절벽에서 떨어져 나와 풍경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계곡 양안으로 원시림처럼 상록수들이 우거져 있는 상황에서 빛은 오묘한 변화를 보여준다. 숲의 그림자가 지는 곳은 절벽에 가까운 곳이며 물이 고여 있는 하천의 중심 지역은 햇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마치 연극무대의 조명처럼 원근감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빛의 변화를 주제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맑은 물 속에 보이는 바위들의 희미한 느낌을 수채화라고 하는 장르로 나타내는 것은 어려운 시험을 보는 수험생과 같은 심정이다. 현무암 지대가 대부분인 섬 제주에서 조면암 지대 계곡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바위들의 특징이 더욱 견고한 강도를 지니고 있으면서 햇살을 받으면 더 밝게 보이는 차이점을 끄집어내려 하였다. 뒤에 풀에 가려지면서도 깊이감과 무게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큰 바위에서부터 물 위에 빙산처럼 일부분이 튀어나와 밝게 빛나는 돌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흙들이며 봄내음 나는 풀들이 하모니를 이루면서 조화롭게 정물화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물상들이다. 물과 돌과 풀이 이토록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계곡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너무도 오랜 기간을 함께 살아온 가족이라서 그럴 것이다. 사물들이 모여서 노래하는 빛의 합창을 그렸다, 바람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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