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5] 3부 오름-(34)토산과 같은 기원의 안돌오름 밧돌오름 지명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5] 3부 오름-(34)토산과 같은 기원의 안돌오름 밧돌오름 지명
안돌오름, 밧돌오름은 ‘안물오름’, ‘밖물오름’
  • 입력 : 2024. 04.02(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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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이 군색한 안돌과 밧돌,
돌(石)과 무관

[한라일보] 구좌읍 송당리 산68-2번지이다. 표고 368.2m, 자체높이 93m다. 이 오름은 두 봉우리로 되어있다. 그중 북서쪽 봉우리가 오름의 정상이다. 이 봉우리와 남동쪽 봉우리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있다. 여기서 물이 흘러내려 호수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배수 시설을 잘하여 물이 고이진 않는다.

안돌오름의 북동쪽으로 연이어 있는 오름이 밧돌오름이다. 표고 352.8m, 자체높이 103m다. 북사면으로 벌어진 화구가 있으며, 이 화구의 상단에 샘이 있다. 오름의 정상엔 바위가 있다.

밧돌오름에서 바라본 안돌오름, 계곡이 뚜렷하다.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의 '돌'이 지시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첫 번째 쟁점이다. 이걸 모르고는 이 지명을 풀 수 없다. '밧돌오름 정상에 바위가 있다. 처음엔 밧돌오름 위주로 두 오름을 아울러 불렀다. 점차 위치상의 안팎으로 구분하면서 안돌오름은 돌이 없지만 더불어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으로 구분하여 부르게 된 것'이라고 추정하는 실정이다. 군색하기 짝이 없다.

고전에서는 1709년 '탐라지도'에 내석악, 외석악, 18세기 '제주삼읍도총지도', 1872년 '제주삼읍전도'와 1899년 '제주지도'에 돌악(突岳), 1899년 '제주군읍지'에 대돌악(大乭峯), 소돌악(小乭峯)으로 나타난다.

지역에서는 돌악(乭岳), 석악(石岳), 월호악(月虎岳), 월후악(月後岳), 월후락(月後落), 혹은 두 오름으로 구분하여 밧돌오름을 외돌악(外乭岳), 외석악(外石岳), 문석악(文石岳)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안돌오름은 내석악(內石岳), 내돌악(內乭岳), 족은돌오름과 큰돌오름으로 구분하여 대석악, 소석악으로도 표기한 사례도 있다.

안돌오름 배수구. 오른쪽에 밧돌오름이 보인다. 김찬수



한자를 가지고 온 외부 집단,
제주어 해독 어려워


지역에서는 돌호레기 혹은 돌후레기라고도 부른다. 이런 발음은 '돌올애기'에서 파생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화석과 같은 말이다. 생물학에서는 화석을 통하여 그 생물이 살아 있는 동안 모습을 복원한다. 언어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돌올레기'란 '돌+올+레기'로 분석할 수 있다. '돌'이란 토산의 지명 기원에서 봤듯이 '물이 흐르는'의 뜻을 갖는다. 안돌오름은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넓게 못을 형성했었다. 이 물은 고대인에게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다. 밧돌오름에는 분화구 내에 지금도 샘물이 흐른다. '올'이란 오름의 고어다. 물장올이란 지명에도 남아 있다. '레기'란 '악'의 개음절화한 발음이다. '악'을 '아기' 혹은 '애기'처럼 발음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한자가 아주 오랜 옛날에도 쓰였다는 뜻은 아니다. 한자 생활 초기에 이 말이 '돌올'이라는 지명에 덧붙은 흔적이라는 것이다. 즉, '돌올악'의 흔적이다. 오흐레기, 올흐레기라는 발음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의 한자 표기는 오흘악(五屹岳)이라고 한다. 이런 발음도 '올악'이라는 고유어 '올'과 '한자 '악(岳)의 복합표기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밧돌오름을 문석악(文石岳)으로 표기한 건 안돌오름에는 계곡이 있는데 이 오름은 계곡이 없는 돌오름이라는 대비지명이다.

이런 내용을 이해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석악(石岳)의 '석'은 오늘날의 '돌(stone)'의 음독자, 돌(突)은 돌의 음가자로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이런 예는 무려 수백 년 전 한자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사실로 본다면 제주어는 상당 기간 독립적으로 유지되어왔고, 한자를 가지고 온 외부 집단은 그 당시 이미 제주어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안으로 흘러드는 물,
밖으로 흘러가는 물

토산의 지명과 돌오름의 지명은 그 기원이 같다.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다시 제시한다. 예컨대 溝(구)라는 한자는 오늘날 '도랑 구'라고 한다. 그러나 16세기에는 '돌 구'로 썼다. 渠(거)라는 한자는 오늘날 '도랑 거'라고 하지만 '돌 거'라 했다. 즉, '도랑'의 조상어가 '돌'이라는 뜻이다. 퉁구스어 중 에벤키어의 '톨개', 에벤어의 '톨구'로 나타난다. 몽골어권의 할하어 '툴게'에 대응한다. 국어에선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돌이 도랑의 뜻을 갖는다.

한편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의 지명에서 '안'과 '밧(밖)' 같은 내외의 구분은 무엇을 기준으로 했는지도 쟁점이다. 안돌오름은 안쪽에 들어앉아서 안돌오름, 밧돌오름은 그 바깥쪽에 있어서 밧돌오름이라고 설명하지만, 이 정도로는 수긍하기 어렵다. 어떤 이는 한라산 쪽에 있어서 안돌오름, 그 바깥쪽에 있어서 밧돌오름이라 한다고 하기도 하고, 목장 안에 있어서 안돌, 그 밖에 있어서 밧돌이라 한다고 하기도 한다. 이 경우 기록상 목장을 설치한 해가 1276년, 이 일대 하잣성을 쌓은 것은 거의 18세기나 되어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이 오름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인가?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왜 한라산은 '안(內)'이라 할까? 목장의 안에 있어서 안돌이라면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은 대체 몇 개나 있다는 것일까? 왜 이 오름들에만 '안'과 '밖'이라는 공간개념을 붙였을까? 이 역시 '돌'의 개념이 흐릿한 데서 기인한 오류다. '돌'이란 물이기 때문에 그 흐르는 방향이 중요하다. 안돌오름 계곡의 물은 두 오름의 가운데(내부)로 향해 흐르고 두 오름이 맞닿는 부분에 못을 이룬다. 밧돌오름의 샘은 두 오름이 마주하는 곳 즉, 이 오름들의 내부로 흘러 고이는 것이 아니라 밖을 향해 흘러가 버린다. 그러니 이 물은 밧돌이 된다. 안으로 흐르는 물이 있는 오름을 안돌오름, 밖으로 흘러가 버리는 물이 있는 오름을 밧돌오름이라 했다. 안물오름 밖물오름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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