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농업유산 제주의 화전(火田)Ⅱ] (1)다시 시작하며..

[잊혀진 농업유산 제주의 화전(火田)Ⅱ] (1)다시 시작하며..
제주 역사 이해하는 키워드… 무관심 속 사라질 위기
  • 입력 : 2024. 04.22(월) 00:00  수정 : 2024. 04. 23(화) 09:13
  • 이윤형 백금탁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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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본지가 올해 '잊혀진 농업 유산 제주의 화전'-시즌 Ⅱ 탐사보도를 이어간다. 지난해에 이어 화전 마을의 흔적을 쫓고, 그 속에 숨겨진 화전민, 제주민들의 삶과 역사를 날줄씨줄로 조명한다. 제주에는 70여 마을에서 화전 관련 지명과 삶의 현장이 남아있다. 제주시, 서귀포시 지역에 고루 분포한다. 이 중 10여 개 화전 마을이 취재 과정을 통해 수십 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 투박하게 쌓아올린 돌담집에서, 우물터에서, 몰방애를 통해 오순도순했던 마을 공동체를 느낄 수 있다. 화전 마을은 20세기 해방공간에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야만의 역사 속에 대부분 사라져 갔다. 이후 수십 년이 흘렀다. 사람들이 떠난 삶의 현장은 중산간 산림지대에, 한라산 고지대에 스러져가는 유적처럼 남아있다.

과거 화전 농사가 이뤄졌던 제주시 영평동 일대와 한라산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화전, 화전 마을은 중산간 일대는 물론 한라산 고지대까지 존재했다. 사진 아래는 제주시 애월읍과 조천읍을 연결하는 애조로. 특별취재팀

중산간 지대는 '약속의 땅'

화산섬 제주는 예부터 땅은 메마르고 백성은 가난했다. 작고한 인문지리학자인 송성대 박사(전 제주대 교수)는 저서 '제주인의 해민정신-문화의 원류와 그 이해'에서 이를 '지척민빈(地瘠民貧)'이라고 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라고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한 일부만이 가능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안가의 땅이 비옥한 것도 아니다. 조금만 흙을 걷어내면 빌레가 드러나고 만다. 토심이 얕아서 땅은 쉽게 메말라버린다. 이른바 '천습지건(天濕地乾)', 하늘은 습하지만 땅은 쉽게 메말라 버리는 토양조건을 지니고 있다.

대신 제주섬에는 중산간의 너른 평원지대가 있었다. 중산간 일대의 광활한 대지는 오랫동안 무주공산이었다. 화전민들에게는 '약속의 땅'이다. 오래전부터 중산간 지대에서 경작을 했다. 그러나 국영목장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다. 조선 세종대 제주인으로는 최고위직인 한성부판윤에 오른 고득종(1388~1460)이 조정에 보낸 상소문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후 부침은 겪었지만 19세기 말에 들어서 중산간 국영목장 지대서 합법적으로 경작이 허용됐다. 1894년 공마제(貢馬制)를 폐지하고 그 대신 1897년부터 금납제가 시행되던 시기부터다. 중산간지대는 물론 한라산 고지대까지 화전 마을이 생겨났다.

민란의 시기, 역사의 전면에

제주인의 생활공간이 중산간 일대까지 확장된 데에는 화전민들이 있었다. 심지어 한라산 고지대라 할 수 있는 해발 1000m 가까운 지점까지 화전 마을이 형성됐다는 기록이 있다. 취재팀은 한라산 고지대에서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화전 마을의 흔적을 찾아내 올해 본격적인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그야말로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할 수 있다.

화전민들의 정착과 이주는 제주도내 상당 수 마을의 형성·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화전, 화전 마을은 제주 마을의 형성과 공간적 이동, 확산,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다. 특히 19세기 후반 제주는 민란의 시기다. 이 시기 과중한 세금과 착취로 민심은 흉흉했다. 이에 강제검 난(1862), 방성칠 난(1898)이 연이어 일어났다. 1901년의 이재수 난도 과중한 세금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이 시기 화전민들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무대에서 아웃사이더가 아닌 전면에 등장한다. 불의와 부조리에 저항한 역사를 볼 수 있다. 민란의 시기 제주 역사는 화전을 도외시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후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4·3으로 화전 마을 대부분 명맥이 사라졌다.

타 지방 보전·활용사업 전개 관심

화전, 화전 마을, 화전민에는 이처럼 저항의 역사, 핍박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 그럼에도 민란과 4·3이라는 언급하기조차 꺼려지는 어두운 역사에 갇혀 제대로 조명이 안되고 있다. 제주사, 생활사 연구의 공백기로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예전 화전 마을이 있던 일부 마을터에 이정표 등을 세우고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게 전부다.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솔도 화전 마을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경상북도 등 다른 지방의 경우는 화전민의 생활상과 화전 마을을 되살려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사업들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역 문화를 보전하고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나가자는 취지다. 화전민이 살던 집 등 화전민촌을 복원하거나 산촌생활박물관을 조성하기도 한다. 볼거리와 함께 이색적인 전통생활을 체험하도록 제공하고, 관광객들의 숙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지자체에서 이와 관련된 조례 제정 등 제도적 장치 마련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여전히 잊혀진 역사에 머물러 있는 제주의 현실과 비교하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제주, 지역의 가치 살려 나가야

제주도의 경우에도 화전, 화전 마을을 제주 역사의 한 부분이자 소중한 생활문화유산으로 되살리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화전은 다른 지방과는 다른 마정사와 목축문화, 돌문화, 생활문화는 물론 마을의 원형과도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단순히 지난 과거의 유산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그 속에 내재된 가치와 역사 문화, 마을 공동체적 유산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이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다른 지자체처럼 지역 특색을 살린 역사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방안도 고민해 나가야 한다.

본지가 올해 시즌 Ⅱ 기획을 이어가는 이유도 이런 지점과 맞물려 있다. 더 이상 잊혀지고 사라지기 전에 화전, 화전 마을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 시급하다. 다른 지방의 보전 활용 사례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제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특별취재팀=이윤형 선임기자·백금탁 정치부장 / 자문=진관훈 박사·오승목 영상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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