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80] 3부 오름-(39)원당봉은 물이 있는 등성마루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80] 3부 오름-(39)원당봉은 물이 있는 등성마루 오름
원나라와 기황후를 끌어들인 원당봉 지명 유래
  • 입력 : 2024. 05.07(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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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라는 국명에 기황후라는 인물까지 등장시켜 현혹


[한라일보] 원당봉은 제주시 삼양동 산1-1번지다. 표고 170.7m, 자체높이 120m다. 상부에 커다란 분화구가 있으며, 북쪽, 바다 방향으로 용암이 흘러 커다란 말굽형 화구를 이룬다. 용암이 흐르다 보면 주변의 쇄설물을 끌고 가거나 흩트리게 되는데, 이런 작용으로 이 용암 유출구의 전면에는 3개의 크고 작은 구릉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 사면에는 원형의 대형 분화구와 그에 딸린 작은 화산체가 언덕처럼 만들어져 있다. 세간에는 이런 작은 봉우리들을 특별히 원당 3첩7봉이니 원당칠봉이니 하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원당봉 분화구 문강사와 연못, 샘에서 솟아난 물이다. 김찬수

오름의 주봉 밑에는 문강사라는 절이 있으며, 절 앞에 원형의 못이 조성되어 있다. 절이 있기 전에는 자연 연못이 있었으며, 논으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 문강사로 진입하기 전에 왼쪽으로 돌아 주봉 밑에 이르면 원당불탑사와 원당사라는 두 개의 절이 마주해 있다. 그런데 이 '원당'이라는 지명을 풀이한 내용이 흥미롭다. 제주도에서 발간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는 '원나라 때 이 오름 허리에 원나라의 당인 원당(元堂)이 세워진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고 한다'라고 소개했다.

또 한편에서는 '구전에는 태자가 없어 고민하던 원나라 순제가 북두의 명맥이 비친 삼첩칠하봉에 탑을 세워 불공을 드려야 한다는 승려의 계시를 믿은 기황후의 간청으로 이곳에 원당사와 함께 불탑을 세워 사자를 보내어 불공을 드린 결과 아들을 얻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찰은 화재로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고 오층석탑만 남아 있다'라고 설명한 자료도 있다. 이런 설명은 모두 공신력 있을 법한 기관에서 발행한 자료에 버젓이 실려있어서 무시하고 넘어가기도 꺼림칙하다. 원나라라는 국명에 기황후라는 인물까지 등장시켰으니 사실일 거라고 믿게 된다.



원당사는 11세기 전~중반 사이에 조성된 절


현재 원당사라는 절은 없다. 소실된 후 그 자리에 불탑사라는 절이 들어섰다. 제주불교사라는 책에는 불탑사 창건연대가 1950년대라고 밝혔다. 제주 불교문화재자료집이라는 책에는 1914년에 창건한 것으로 되어있다. 아무튼, 지금의 불탑사는 근현대에 들어 세워진 절이다. 다만 이 절에 있는 제주 불탑사 오층석탑은 원당사의 유물로서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탑으로 인해 이곳이 원당사의 옛터임을 알 수 있다.

보물 제1187호 불탑사 5층 석탑, 이곳이 원당사 절터임을 말해준다. 김찬수

원당사는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제주 15개 사찰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123년이나 지난 효종 4년(1653)에 간행된 탐라지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절은 그 기간에 창건된 절일까? 이 절의 실체와 창건연대는 원당봉의 이름과 관련하여 중요하다. 지금은 폐사된 절이지만 그 절터에서 발굴한 유물을 분석한 결과가 있다.

원당사 절터에서 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그중에 해무리굽완이라는 청자가 발굴되었다. 완(碗)이란 사발 같은 그릇을 말한다. 주로 차를 마실 때 잔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해무리굽완은 10세기 전반에서 11세기 후반까지 제작되다가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초반에 완전히 사라져 버린 청자 그릇이다. 이 외에 녹청자대접도 있었다. 이 그릇도 시기를 판명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이런 유물들을 근거로 원당사는 11세기 전~중반 사이에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당시 사찰 이름이 원당사였는지는 관련 기록이나 명문 기와가 나타나지 않아 확실하게 밝히기 어렵다. 다만 조선 단종 2년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 제주의 봉화 9곳 중 원당(元堂)이란 이름이 나온다. 조선 시대 이전에 이미 원당사라는 이름의 사찰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다. 또한, 원당이란 이름이 오름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점도 추정 가능한 부분이다. 봉화의 명칭을 절 이름에서 땄다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다는 점에서다.



원당사는 원당봉에서, 원당봉은 돌오름에서 기원


원나라나 기황후와 원당봉은 관계가 없다는 증거가 더 있다. 충렬왕 26년 1300년 기황후가 탐라에 목장을 설치하고 수정사와 원당사를 창건했다고 탐라기년(耽羅紀年)과 제주도실기(濟州道實記)에 기록되어 있다. 이걸 근거로 기황후와의 관련설을 자꾸만 거론한다. 그러나 기황후가 원나라 순제(1320~1370)의 궁녀로 들어간 것은 충숙왕 복위 2년(1333년)이고, 그녀가 황태자를 낳은 것이 동왕 복위 8년(1339년)이므로 사실과 다르다.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절을 창건했다는 격이다.

원당봉이란 '돌오름'에서 기원한다. 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토산봉, 안돌오름, 밧돌오름, 감낭오름, 원물오름, 도두봉, 다래오름도 같은 기원이다. 특히 원물오름의 지명도 원(元)이 목장을 설치하여 물을 이용했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엉뚱한 얘기다. 원물오름을 역사에서는 원수악(元帥岳), 원수악(院帥岳), 원수악(院水岳), 원수악(元水岳), 원수악(阮水岳), 원수악(鴛水岳) 등으로 기록했다. 돌오름을 나타내기 위해 온갖 '원'자를 동원했다. 원이 당을 설치했다는 것도 엉뚱한 얘기다. 당(堂) 역시 무속에서 말하는 당과는 거리가 멀다. 등성마루를 지시하는 마루의 변형이다. 이 부분은 차후에 추가로 설명할 예정이다. 원당봉이란 원나라나 기황후와는 관련이 없다. 원당사는 원당봉이라는 지명에 기원한 이름이다. 원당봉의 어원적 의미는 물이 있는 등성마루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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