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70)신발 모양 어둠-심재휘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70)신발 모양 어둠-심재휘
  • 입력 : 2024. 06.04(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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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모양 어둠-심재휘




[한라일보] 끈이 서로 묶인 운동화 한 켤레가 전깃줄에

높이 걸려 있다 오래 바람에 흔들린 듯 하다

어느 저녁에 울면서 맨발로 집으로 돌아간

키 작은 아이가 있었으리라

허공의 신발이야 어린 날의 추억이라고 치자

구두를 신어도 맨발 같던 저녁은

울음을 참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구부정한 저녁은

당신에게 왜 추억이 되지 않나

오늘은 짙은 노을이 당신의 발을 감싸는 하루

그리고 하루쯤 더 살아보라고 걸음 앞에

신발 모양의 두툼한 어둠이 내린다

삽화=배수연



전깃줄에 걸린 운동화 한 켤레에 대한 평명한 진술이 있은 후에 시에 맺히는 울음은 어린 날이나 오늘, 별다를 것이 없이 겹쳐진다. 울음이 나오지 않을 때는 침묵을 삼키며 구부정한 저녁에게 묻는다. 철모르는 아이는 맨발의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억으로 보살펴지지만, 현대의 가파른 시간은 왜 누군가의 추억이 되지도 못하며 할 일이 없어도 맨발로 뛰어야 하는 처지와 다르지 않은가. 어떤 존재든 결국 벗은 발로 돌아가는 거지만, 어린 날의 저녁과 오늘의 저녁은 불안과 안쓰러움 속에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끈이 서로 묶인 운동화 한 켤레는 인격을 확보한 채 전깃줄에 묶여 있다. 과거와 현재는 차이보다는 유사성에 의해 변주되다가 내일은 어둠이라도 두툼한 신발 모양으로 그려진다. 하루쯤 더 살아보라고 내일은 반드시 있다고. 그러나 우리는 죽은 과거를 데리고 끝없이 내일 위로 미끄러지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우는 인간은 그렇게 웃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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