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목장에서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정겨운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승국 시인
산맥처럼 펼쳐진 오름들 한눈에꿀풀 가락지나물 등 야생화 즐비천개의 꼬리 달린 천미천도 탐방
[한라일보] 유월 첫날이다. 푸르른 숲의 향기가 수채화 그림처럼, 다시 만나 부르는 친구의 노래처럼, 미치도록 우리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 신록의 계절이다.
지난 1일 진행된 한라일보의 '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행사는 12.5㎞의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부소오름과 민오름 정상, 천미천의 오르막은 힘들었지만 삼나무숲길, 오름둘레길, 초지, 임도 등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었다. 부소, 부대, 민, 대천이, 방애의 5개 오름과 둘레길, 천미천, 목장 등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와 교래리에 걸쳐 있으며, 조선시대 목마장 구분으로 2소장과 산마장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부소오름의 국유임도는 정비가 잘 돼 있었고, 길가에는 한창 꽃을 피운 때죽나무와 비목이 살랑이며 우리를 반겼다. 또한 잎새 밑에 박쥐처럼 매달려 꽃을 피운 박쥐나무가 수줍게 인사한다. '새몰매'라는 아름다운 지명을 겸비한 부소오름은 바로 북쪽에 붙어있는 부대오름과 대비돼 불려진 형제지간의 오름이다. 새몰매는 새끼말들을 길들이는 산이라는 점에서 이 일대가 예로부터 목축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가락지나물
수염가래
U자형 말발굽형의 굼부리로 유명한 부대오름은 2차대전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의 결7호 작전의 일환으로 갱도진지를 구축해 주둔했던 곳이며, 8부능선 일대에 10여개의 갱도진지가 남아있다. 이 시대를 겪은 송당 할아버지들은 "부대악 하찌하찌, 거슨새미 시찌시찌"를 노래처럼 부른다. 일본군 88, 77부대가 양쪽 오름에 주둔했었다는 말이다.
삼나무숲길을 치고 오른다.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다보니 간벌을 한 모양이다. 간벌은 열을 맞춰 자르는게 원칙이다. 우리가 걷는 5개의 오름 하단 사면에는 1970년대 산림녹화 사업으로 심은 삼나무가 50년생이 되면서 오름을 장악했다. 삼나무는 다른 식물과의 공존을 허용하지 않아, 나무 밑에는 일부 양치식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삼나무 무용론을 설파하나 보다.
힘들게 오름 등성이를 오르다 보니 제주 휘파람새의 독특한 소리와 뻐꾹새 소리에 맞춰 어린시절 부르던 "듬뿍듬뿍 듬뿍새" 오빠생각 노래가 들려온다. 그렇다. 숲은 인간에게 태초의 고향이기에 옛사랑의 추억처럼 지난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숲이 인간에게 주는 치유의 선물이다.
애기풀
옥잠난초
윤노리나무
부소오름 정상을 지나 가파른 하산 경사가 우리를 힘들게 했으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천미천으로 향했다. 천미천을 거슬러 오른다. 때죽나무 별꽃이 소(沼) 물결위로 떨어진다. 우리의 인생처럼 아련하다. 일천 개의 꼬리가 달린 하천, 27㎞에 이르는 제주 최장의 하천인 천미천은 해발 1400m의 어후오름에서 발원해 물장올, 물찻, 부소, 개오름 등을 거쳐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바다에 이른다. 제주 동부지역 생태환경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고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특이한 화산지질구조대를 관류하는 중요성으로 2025년에 국가하천으로 승격한다.
선흘 민오름을 향해 다시 걷는다. 푸른 목초지대 뒤쪽으로 부대오름 분화구 뒤쪽 사면이 선명하게 보인다. 초원 주변에는 듬성듬성 오래된 무덤과 땅에 붙어 꽃을 피운 꿀풀, 석송, 제비, 가락지나물, 엉겅퀴 등의 야생화가 소담하게 피어있다. 4부 능선까지 조림된 삼나무숲을 지나 가파른 경사의 난코스를 힘들게 올라 민오름 정상에 섰다. 조천에서 성산으로 이어지는 오름들의 풍광은 지리산맥처럼 웅장하게 다가왔다.
줄딸기
박쥐나무
민오름에서 하산 후 임도를 지나 대천이오름 둘레길을 돌아 방애오름으로 향한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푸른 광야의 목초지에서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그 푸르른 평화로운 정경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교래리에 위치한 방애오름은 굼부리가 오름 안쪽으로 움푹들어와 '방애(방아)'와 같이 생겨 이름이 유래됐다. 굼부리는 천연의 요새처럼 아름다운 목장이다. 족은방애오름이 남쪽 귀퉁이에 붙어있으며 나지막하다.
오승국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막바지 여정이다. 방애오름 서쭉 날개로 올라 등성이를 걸으며 이 대지를 누볐던 제주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목동들, 일제강점기의 일본군과 제주사람들, 4·3사건 시기 최후의 무장대들이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미래로 도로변 종착점에 도착했다. 서로의 피로를 위로하며 마지막 종을 울렸다. 오승국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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