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1100도로를 타고 중문으로 넘어가다 옛 탐라대학교 부근 중산간 도로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마을이다. 남쪽 대포마을과 경계를 이루는 어두모루에서부터 한라산 방면으로 너벅털우등이까지가 남북 영역이다. 아직도 회수라는 마을 이름보다 '도래물'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어르신들이 많다. 마을이름 변천과정에서 나타난 놀라운 스토리텔링 자원을 발견하게 된다. 식수원으로 쓰던 동수물의 어원은 원래 1510년 동해방호소라고 하는 군사시설이 있던 곳이다. 그 동해방호소 부근 자연촌락을 동해촌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260여 년 전에 중문리에서 분리되어 회수리(回水里)로 정했다. 이 명칭을 21년 정도 쓰다가 도문리(道文里)로 바꿨다.
이 도문리라고 하는 마을 이름에서 회수리(廻水里)로 바뀌는 과정이 전설의 형태로 내려오면서 마을 주민들의 진취적 마인드가 드러나게 된다. 전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도문리라고 하는 마을 명칭을 쓰던 시절엔 가난에 허덕이는 경우가 많았다. 후손들을 위하여 고심하던 주민들이 존자암에 기거하던 영험하신 스님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대답은 '마을 형세가 계축용이 팔자수(八字水)를 먹고 있으니 용 중에 가장 가난한 용이라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서쪽에 가시머들내와 동쪽에 송장이내(회수천)이 여덟 八자 모양으로 흐르는 사이에 마을이 있으니 그렇다는 뜻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극복방안을 찾은 것이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마을 방위를 돌려놓자는 생각. 칠(七)자는 방향을 바꾸는 글자라고 여겼으니 마을 밑(남쪽)에 우물을 파서 일레샘(七日泉)을 만들고 동쪽으로 앞으로 하는 탑을 쌓아서 풍수에서 오는 숙명적인 인식을 바꿔버린 것이다. 동쪽에 있는 동산을 앞동산이라고 부르고 웃거리를 앞거리로 부르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자 병들어 죽던 가축들이 없어지고 어떤 집안은 우마(牛馬)가 100여 마리로 늘어나 대부분 가난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마치 세계지도를 180도 돌려서 보면 제주도가 이 나라 맨 위에 놓이게 되므로 세계를 향한 제일선에 있게 되는 역발상을 감행한 사람들이다. 풍수가 운명이라면, 운명이 불리했을 경우에 능동적으로 이를 돌려놔버리겠다는 뚝심이 결국 마을 이름이 된 것이다. 돌려놨다는 의미의 회(廻)는 마을 공동체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 자원으로써 이처럼 장쾌한 자산을 보유한 마을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운명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극복해내는 훈육적 가치관이 가득 숨어있는 것이다.
강동한 마을회장에게 회수마을이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답은 간명하게 "하우스 시설감귤이 시작된 곳이지요." 구체성을 띤 표현을 통하여 도전적 개척정신을 표방하고자 한 것이다. 다른 마을에서 '과연 될까?'라고 생각하는 것을 "해봐야 알지!"라고 하면서 먼저 부딪쳐 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정신을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추종적 숙명 거부의 정신과 잇닿아 있는 유전자. 이는 마을 결속력으로 귀결되고 마을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회수사거리는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정밀한 조사 자료를 행정에서 보유하고 있겠거니와 교통사고 위험이 많고, 실제로 최근에도 발생하였다고 하는 문제점. 최소한의 조치로 회수 사거리 진입하기 50m 전에 모든 곳에 과속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으면 불안감을 줄일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주변에 관광지들도 많고, 렌터카들을 많이 이용하는 시대상에 비추어 회수사거리가 지니고 있는 교통사고 위험요인을 제거해 달라는 것은 행정에서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집행이 뒤로 밀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중산간 지대와 인접한 마을이기에 환경적 민감도가 높다. 특수한 시설들이 마을 위에 건설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는 지하수 오염에 대하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회수마을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개발행위들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한 후에 실행돼야 한다. 강동한 마을 회장이 던지는 미래지향적 메시지가 모든 우려스런 현실을 함축하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에 감명 받는다." <시각예술가>
오르막 길<수채화 79cm×35cm>
파격적인 구도다. 동양화의 여백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소실점을 가진 원근법에 의한 그림이면 근경과 중경, 원경이 알맞게 배치돼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임에도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르막길 근경이 중경을 모두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근경과 원경뿐인 그림이 된 것이다. 회수마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뭔가를 찾아 동쪽에서 서쪽지역으로 걸어가던 중에 북쪽으로 난 길을 올려다봤다. 순간, 스쳐지나가는 장면은 물허벅을 진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매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경로당의 어르신들은 등짐을 경험한 세대다. 남북으로 경사가 심한 정주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지고 다니던 짐의 무게는 더 큰 고역이었으리니. 조상들은 가옥 밀집지역에서 600m 정도 떨어진 동수물까지 가서 식수를 물허벅에 져다 먹었다고 한다. 동네에 경조사가 나면 가장 큰 부조가 물허벅으로 몇 번 물을 길어다 주는 것이었다고 하는 마을. 그 물허벅을 지고 오르내리던 길을 아주 크게 그렸다. 돌담처럼 쌓인 세월과 사연들이 기억하고 있는 땀방울들이 흘러와 오늘이 된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풍경 속에 담으려 욕심을 부렸다. 멀리 원경 속에는 환한 빛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으니 지친 오늘의 발걸음이 설령 조금은 어둡고, 무겁더라도 저기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내일의 태양을 맞이할 자격은 '오늘의 태양과 함께 부지런해야 한다'는 저 오르막길. 풍경화이기에 앞서 어떤 마을의 정신을 담고 싶은 그림이다.
초록과 비닐하우스<수채화 79cm×35cm>
연필 색이 많이 드러난 담채화로 상큼하게 맹하의 초록과 비닐하우스를 만나게 하였다. 그림이라고 하는 형식으로 비닐하우스가 초록자연과 만나면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특히 수채화가 보유한 담백함이 저 반투명 비닐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등장시키게 되는 이유는 초록이라고 하는 풀과 나무의 도움 덕분일 것이다. 조금은 분지 형태로 저지대를 이루는 밭과 높은 지대에 있는 밭이 삼나무들의 배치와 절묘한 구도를 발생시킨다. 누구네 밭이며 누구네 비닐하우스 인지는 마을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모를 일이로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토록 오묘하게 위치를 잡아 자리를 하고 있어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여름날 오후의 태양광선이라지만 장마철이라 그다지 강렬하지는 않다. 그래도 얇은 구름 사이로 내려오는 광선은 자연과 인공시설물이 만나서 생존의 터전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오른쪽에 병풍처럼 막아선 나무들이 전체적으로 광선의 양을 강하게 대비시켜 주므로 하여 시각적 완성도를 더하게 된다. 짙은 연필로 전반적인 느낌을 고전적 수묵채색 기반을 간직하게 하고 그렸다. 마을의 지형지세를 관찰하며 얻은 느낌을 그리는 것 또한 상투적인 구도에 부합하는 것들을 그리는 것보다 도전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생각에 보람을 얻는다. 겨울의 느낌은 다를 것이다. 그때, 다시 와서 그리고 싶은 그림이다, 이 독특한 공간을 저녁 무렵에. 회수마을의 개척정신을 바라본다. 시설감귤의 도전정신이 저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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